근처 무스비 집에 들려 아침 식사를 대신할 요량으로 스팸무스비를 몇 개 사 왔다. 하와이는 유독 스팸을 사랑하는데 이 곳에 깊게 스며든 일본 문화와 결합해 스팸에 데리야끼 소스를 발라 구워 밥 위에 얹은 스팸무스비가 특히 유명하다. 별 것 없어 보이는 단순한 메뉴지만 짭조름한 그 맛을 계속 찾게 된다. 그 사이 남편은 렌터카를 픽업하러 떠났다. 오늘은 노스쇼어(북쪽해안)을 둘러볼 차례다.
차를 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핑크색의 귀여운 도넛 캐릭터로 꾸며진 레오나즈 도넛이었다. 갓 구워낸 따끈따끈한 말라사다 도넛을 파는 곳인데 그 맛이 상당하다. 뿅갹이는 앉은 자리에서 한 개를 뚝딱 해치웠다.
본격적으로 오아후 섬을 가로질러 북쪽을 향해 내달았다. 와이키키를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드넓게 펼쳐지는 벌판과 간간이 보이는 주택들이 색다른 풍경이었다. 화산지형이 그대로 보존돼 마치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조수석에 앉아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달려 푸드트럭이 밀집한 곳에 도착했다. 하와이는 푸드트럭 문화가 발달한 편이라 간이음식점이라고 해서 그 맛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새우를 파는 푸드트럭이 제일 유명하다. 갈릭스캠피와 타바스코 두 가지 맛을 시켜 손가락 쪽쪽 빨며 접시를 모두 비웠다. 지금도 그 맛이 종종 생각나곤 한다.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북쪽 해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바닷가마다 저마다 이름이 붙어 있는데 우선 터틀비치에 들렀다. 바다거북이 종종 출몰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가 갔을 땐 바다거북을 보는 행운은 없었다. 다음에 들렀을 땐 만날 수 있길 바라며 근처 해변으로 이동했다. 석양이 예뻐 선셋비치라 이름 붙은 곳이다. 오아후의 북쪽 해안은 파도가 세서 서핑하기에 적합해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짐을 풀고 해수욕을 즐겼다. 워낙 바다를 좋아하는 뿅갹이는 모래 놀이를 하기도 하고 파도를 타기도 하며 자신만의 감상을 내놓았다.
"엄마, 바다는 모래를 먹고 사나봐"
아이들의 깜찍한 상상력은 생각도 못한 순간에 미소짓게 한다.
한참 동안이나 물놀이를 한 뒤, 슬슬 배가 고파 쿠아아이나버거로 이동했다. 하와이니만큼 아보카도가 들어간 버거와 파인애플 버거를 시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근처의 아기자기한 서핑가게도 구경하고 다시 오아후섬을 가로질렀다.
장시간의 물놀이로 지친 뿅갹이는 차에서 잠이 들었고 우리는 월마트에 들려 내일 사용할 스노클링 장비와 바디보드를 고르고 한국에 가져갈 마카다미아와 초코렛 따위를 골라 담았다.
다음날 아침, 물놀이 장비를 챙겨 오늘도 이야스메 무스비로 향했다. 각자 취향에 맞는 무스비로 아침 식사를 한 뒤, 점심에 먹을 것까지 사서 서둘러 하나우마 베이로 향했다. 하나우마 베이는 스노클링 전용 해변으로 다른 해변들과 달리 입장료를 받고 스노클링에 대한 주의사항을 담은 교육까지 받은 후에야 해변에 입장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우리는 레일라와 그녀의 가족을 만났다.
레일라와 그녀의 언니는 미국 본토의 뉴저지에 살다가 하와이로 이주했다고 했다. 뿅갹이보다 한 살 어린데도 이곳에 살아서인지 수영이 훨씬 능숙했다. 햇빛에 그을린 자매의 피부가 매우 건강해 보였다. 그녀의 엄마는 식빵 한 줄과 잼 한통을 그대로 들고와 간단한 점심으로 먹으며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에겐 너무 희소한 이 순간이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뿅갹이와 레일라는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되어 함께 백사장과 바다를 오가며 한없이 꺄륵거렸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 스노클링을 즐겼는데 허벅지만한 커다란 물고기들이 바로 옆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은 처음 봤다. 오랜 침식으로 이뤄진 만의 끝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깊은 만 안으로는 파도가 잠잠해 수많은 산호와 물고기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그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눈에 담아두고 또 담아두었다.
멋진 풍광을 뒤로하고 나와 쿠알로아 랜치로 향했다. 단순한 목장이라기에는 광활한 규모와 원시 자연환경이 보존된 곳으로 쥬라기 공원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남편은 이 곳에서 2시간가량 ATV를 타며 경치를 즐기기로 했다. 나와 뿅갹이는 말을 구경하며 목장을 거닐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렌터카를 반납할 시간이 되어 서둘러 와이키키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호텔 근처에서 생겼다. 갑자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렌터카 업체의 마감시간은 30분도 채 남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견인을 하고 하루치의 주차비와 렌트비까지 더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연이어 시동을 걸려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해외여행 중에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면 국내에서보다 몇배는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때 우리의 상황을 눈치했는지 근처에 잠시 주차중이던 트럭 운전수가 다가왔다.
"Do you need some help?"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그의 손에는 이미 점프선이 들려있었다. 자신의 차에 연결해 점프를 뛰어주었고 이내 부르릉 시동이 걸렸다. 그에게 연신 고마워하며 무사히 렌터카를 반납할 수 있었다. 골치 아플 뻔한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해준 그 덕분에 하와이의 기억은 더욱 친절하고 기분 좋은 곳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하와이의 강렬한 햇살에 온통 화상을 입은 몸에 알로에젤을 바르고 얼음찜질을 하며 밤을 보냈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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