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임산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지,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 등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여행까지 보태 사치 풍조를 더하는 것은 아닌지, 본인이 가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이면서 괜히 '태교'라는 이름을 붙여 아이를 위해 떠나는 척하는 건지 등이 주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아이 엄마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에 대해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내 견해를 밝히자면 앞으로 펼쳐질 육아의 고통을 생각하면 태교 여행이건 임산부 여행이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있는 힘껏 떠나라고 하고 싶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지 몰라 태교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출산 후에는 지옥 같은 모유 수유가 시작됐다. 13개월차에 단유할 때까지도 수시로 찾아오던 젖몸살 때문에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또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양가 어르신들의 걱정이 더해져 뿅갹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의 보상심리는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세계 일주라도 한 후에 둘째를 낳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어디를 갈지 고민한 결과 택한 곳은 하와이였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뿅갹이와 멋진 경관, 쇼핑, 맛있는 먹거리까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가족 여행지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10시간 가까이 되는 긴 비행시간이 문제였지만 그동안 비행기를 잘 타준 뿅갹이였기에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아이패드에 뿅갹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가득 담아 헤드폰까지 챙겨서 하와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지루했던 비행시간이 지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 탁 트인 와이키키 해변을 보니 마침내 하와이에 도착했음이 실감 났다.
체크인을 마치고 바로 수영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와이키키 해변으로 갔다. 바다를 좋아하는 뿅갹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정이었다. 습하지 않은 쾌적한 날씨와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는 수시로 내리는 소나기를 맞아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해변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바오밥나무와 주변의 야자수들, 즐비한 맛집들이 와이키키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간간히 찾아오는 무지개는 더욱이 이 곳이 하와이임을 상기시켰다.
한참 물놀이를 마치고 나와 허기진 배를 달래러 치즈케익팩토리로 갔다. 바글바글한 사람 덕에 꽤 기다려야 했지만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그 시간조차 즐거웠다. 남편은 유학 시절 가장 즐겨 먹었던 스트로베리 치즈케익이라며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비행기를 타고 온 데다가 바로 해수욕까지 즐긴 뿅갹이는 이내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우리는 주변 상점들을 둘러보며 둘 만의 시간을 즐겼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편의점을 비롯해 FOREVER21이나 H&M과 같은 상점도 모두 밤 11시 혹은 12시까지 영업하는 덕에 칼라쿠아 거리의 밤은 늦도록 활기찼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에그스앤띵스를 찾았다. 팬케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이 곳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오리지널 팬케익을 하나 주문하고 하와이의 로컬음식인 로꼬모꼬를 시켰다. 밥 위에 함박스테이크를 얹고 그레이비 소스와 달걀을 곁들인 이 음식은 하이라이스와 맛이 유사해 한국인의 입맛에도 아주 잘 맞는다. 남편은 낯선 음식을 시키자 처음에는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한입 먹더니 입맛에 아주 잘 맞았는지 그릇을 싹 비웠다.
밥을 먹고 나와 아일랜드 빈티지 커피에 들려 코나커피를 마셨다. 코나커피는 하와이에서 나는 원두라 여행객들이 많이 사가는 품목이기도 하다. 렌터카를 예약하고 하와이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알라모아나로 향했다. 같은 날 체크인 했던 엄마와 함께 온 여섯살 누나를 만나 동행했다. 쉐이브 아이스도 먹고 한국에 들어와 있지 않은 디즈니스토어와 레고스토어도 들렸다. 장난감을 워낙 좋아하는 뿅갹이는 아주 신이 났다. 그 틈을 타 내 것도 재빨리 쇼핑하고 근처의 월마트까지 돌며 스노클링 장비와 바디보드를 구입했다. 월마트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여행 기간 동안 사용할 각종 물놀이 용품을 살 수 있어 여행자들도 많이 들린다. 판다익스프레스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기분 좋은 피곤함과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안고 잠에 들었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