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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피싱에 속아 은행 계좌의 명의를 대여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과실의 책임을 얼마나 물을 수 있을까.
5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광주지법 박민우 판사는 메신저 피싱을 당한 70대 B씨가 명의 대여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A씨에게 피해금의 30%인 21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22년 10월 자신을 저축은행 상담사로 소개한 메신저 피싱범이 "대출받으려면 신용등급을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 대출과 상환실적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에 카드론으로 300여만원을 대출받고 가상계좌를 만들어 메신저 피싱범이 지정한 다른 은행 계좌로 송금하는 일을 계속 반복했다.
같은 시기 B씨는 자기 딸로 속인 메신저 피싱범의 휴대전화 문자를 받고 자신의 신분증을 메신저 피싱범에게 보냈다. 이때 B씨의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앱이 설치되고, 오픈뱅킹 계좌가 개설돼 A씨의 계좌로 700만원이 이체됐다.
B씨는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으나 메신저 피싱범은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명의를 빌려준 A씨에 대해 범죄혐의가 없는 것으로 보고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았다. 이에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A씨가 대출을 위해 메신저 피싱범과 수십차례 통화하고 자신의 계좌에 송금된 돈을 시키는 대로 반복 이체한 비정상 금융거래에 주목했다.
A씨가 범죄 가담 의도는 없을지라도, 부주의로 인해 범죄행위를 도운 점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고, B씨가 입은 피해금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는 "나도 카드 대출금 300만원을 사기당했다"며 범죄와 무관함을 주장했다.
법원은 "A씨가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임을 인식할 수 있음에도 계좌정보를 제공했고, 사기 범죄단에 돈이 전달되도록 사기 범행을 방조했다"면서도 "다만 B씨도 경솔하게 신분증 등을 제공한 과실을 참작해 A씨의 책임을 30%로 제한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B씨의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구태환 변호사는 "대출을 빌미로 계좌정보와 함께 이체 등을 요구하는 형태의 메신저 피싱이 늘고 있다"며 "비정상 금융거래에 가담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이를 배상해야 함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림 키즈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