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비혼 출산'을 법적으로 포용하는 정책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0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개최한 '인구정책으로서 비혼출산 어떻게 봐야 하나'란 세미나에서 김영철 서강대(경제학) 교수는 발제를 통해 "유연한 가족제도의 도입이 혼인 감소에 대한 적극적인 출산율 방어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비혼 가정을 사회의 제도적 틀 내에 포용해 안정적인 생활환경 조성을 지원하고 정책적 배려와 복지 혜택 확충을 통해 출산과 양육에 따른 고충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0미만(2022년 0.78명)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을 기록한 국가다. 출생아 수 중 혼외(비혼) 출생아가 차지하는 혼외 출생률도 유독 낮은 편이다.
2018년 기준 OECD 국가 평균 혼외 출생률은 41.5%이며, 칠레, 코스타리카,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는 70%를 넘는다. 반면 한국은 2.2%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한국이 OECD 평균 수준의 혼외 출생률을 나타낸다면 합계출산율은 1.55명까지 올라가 OECD 평균(1.61명)에 근접하게 된다.
김 교수가 혼외 출생률에 주목하는 이유는, 혼외 출산이 OECD 국가들의 출산율 급락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통계적으로 이들 국가의 혼외 출산 비중과 합계출산율 사이에 39%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의 혼외 출생률이 유독 낮은 것은 서구 국가와 달리 혼외 출산이 부도덕 또는 비윤리적이라는 사회적 평가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국가도 애초부터 혼외 출산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 교수는 "유럽 국가들의 혼외 출생률은 1970년대 2~8% 수준이었지만, 혼인과 출산의 '디커플링' 양상이 유럽과 북미권 전역으로 확산된 것은 2000년 들어서면서부터"라며 "가부장제의 틀이 깨지면서 동거 가정에서 시작하고 혼인 커플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생활 양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외 출생률이 높지 않지만 이런 '디커플링' 조짐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0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동의한다'는 명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비율은 2015년 9.4%에서 15.4%로 상승했다.
특히 12~19세는 9.6%에서 20.7%로, 20~29세는 8.3%에서 23.0%로 크게 높아졌다.
김 교수는 "변화된 사회상에 맞춰 오늘의 청년세대에 적합한 가족지원 체계를 갖추는 게 우리 시대의 당면 과제"라며 "특히 출산율의 급속한 저하를 막기 위해 비혼 동거를 제도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비혼 동거는 혼인의 예비단계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것처럼 '동반가정 등록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동반가정에 등록된 비혼 동거 가구가 양육 관련 제도적 혜택을 받고 등록된 파트너 모두에게 자녀의 보호자로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은기수 서울대(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인구정책을 떠나 비혼출산에 관한 개인의 자율적 선택으로 인정해 '정통적인 출산'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법적, 제도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사회복지학) 교수도 "개인이 선택한 삶에 대해 정상성 여부를 판단하고 제도적으로 거부하며 사회적 낙인을 주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저출산 현상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미 키즈맘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23-06-20 19:19:05
수정 2023-06-20 22: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