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경림 기자
아이의 영어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망원경을 동원하거나, 이미 그 끝에 다녀온 사람들의 탐험 일지를 열람하거나. 고광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거인의 어깨에서 숲을 보세요"
망원경도, 탐험 일지도 내려놓을 것. 거인의 어깨 위에 발을 딛고 보자. 부모가 지향하는 종착지가 또렷하게 보인다. 영어 교육 시야가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25년간 다양한 영어 교육 사례를 연구하며 영어를 잘 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을 ‘영.유.아의 10가지 비밀’로 정리한 고광윤 교수를 키즈맘이 만났다.
1. ERT(Extensive Reading Train)에 올라탔다.
영어가 유창한 아이들은 지식 습득 속도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영어책을 많이 읽었다. 영어책 읽기는 초반에는 느린 것 같아 보여도 결과적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보편적인 영어 교육법이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결국 멀리 가는 것이 관건이다.
2. 즐다잘에 성공했다.
이 아이들은 즐독, 다독, 잘독의 선순환에 성공했다. 영어책 읽기에 즐거움(즐독)을 느끼면 많이(다독) 읽게 된다. 많이 읽으면 잘(잘독) 읽게 된다. 그리고 잘 읽으면 자신감이 생겨 또 다시 즐거움(즐독)을 느끼는 선순환 구조가 성립된다. 굴러가며 몸집을 키우는 눈덩이처럼 아이의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한다.
3. 일찍부터 영어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와 자극적인 콘텐츠에 일찍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기에 먼저 몰입하면 아이들은 영어책 읽기의 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이가 현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콘텐츠보다 영어책 읽기의 즐거움을 먼저 깨닫게 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4. 좋은 책을 읽지 않았다.
도서 선정 시 좋은 책, 추천도서, 명작 등의 조건에 구애 받지 않았다. 당사자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책 위주로 읽었다. 부모가 보기에 시시한 내용이어도 아이가 흥미를 느낀다면 그 책을 읽게 하자.
책을 편식하는 것도 당장은 괜찮다. 즐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서 분야를 확장하는 건 아이가 성장하며 스스로 필요성을 깨우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5.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주로 읽었다.
영어를 잘 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현재 수준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쉬운 책을 고르면 영어를 공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며, 내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그렇게 다독하면 어느 새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 너무 어려운 책은 영어책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즉, 아이가 동기부여를 얻지 못한다.
6. 영어 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다.
이 아이들에게 영어책 읽기는 공부가 아닌 즐거운 독서였다. 책을 보고 단어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책 속 내용을 음미하다 보니 그 단어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영어를 학습했다.
7. 파닉스를 배운 적이 없다.
파닉스를 따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파닉스 규칙은 모른다. 다만 영어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닉스를 익혔다. 그저 영어를 즐겼을 뿐인데 파닉스를 학습한 것 같은 효과가 저절로 따라온 셈이다.
8. 단어 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단어를 많이 아는 이유는 여러 권을 읽는 동안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쉬운 책을 읽으면 모르는 단어라도 문맥상 의미 유추가 가능하다. 그 때 단어의 뜻을 알게 되고 이후에 다른 책에서도 동일한 단어를 계속 만나며 저절로 이해하게 됐다.
9. 영어 단어를 아는 방식이 다르다.
표면적인 뜻만 암기하지 않기에 단어 습득 방식이 다르다. 이 아이들은 쓰임새를 위주로 단어를 이해한다. 영어책 읽기를 통해 문장을 많이 접하면서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관찰하고, 이 과정에서 단어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함의까지 배운다.
10. 운이 좋았다.
영어가 유창한 아이들의 뒤에는 영어 교육 방법을 거시적으로 보는 부모가 있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학습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올바른 교육 방법을 알고 실천력이 뒷받침 되는 부모를 만났다는 행운이 있었기에 영어를 잘 할 수 있었다. 운 좋은 아이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조금씩, 꾸준히, 제대로,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진행하자.
** 기사 제목의 '영.유.아'는 고광윤 교수가 고안한 단어로 '영어가 유창한 아이들'의 줄임말이다. 고광윤 교수의 영어 교육법은 신간 ‘영어책 읽기의 힘(길벗)’에서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김경림 키즈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