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왜 그런지 알아요. 하느님이 먹지 말라는 거 먹어서 그 벌로 아빠는 죽어라 일해라...라는 벌이 내려졌고요. 엄마는 죽을 만큼 아프게 애기 낳아라 하는 벌이 내려졌대요.’
얼마 전 모 기관의 유아성교육에서 만난 6세 아이가 뱃속에 태아를 품고 있는 여성의 얼굴 표정을 보더니 내게 했던 말이었다.
평등적 사고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양육과정에서 남녀의 성역할에 대해 이렇게 규정을 짓고 아이들에게 흔한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6세 아이가 내게 이렇게 말한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생김에 대한 다름부터 시작해서 내가 하는 질문에 너무나 똑똑하게 대답을 잘해서 "우리 친구는 어쩜 이렇게 말을 예쁘게 잘할까? 가족들이 너무 예뻐하겠다"했더니 아이는 대뜸 "엄마가 낳아주셨어요" 한다. "아빠도 함께 낳아 주신거지" 하는 내 말에 "아빠는 출장 가셨어요. 근데 아빠는 이제 안 오신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였다. 왜 나는 아빠가 없는 것인지, 다른 가정의 모습과 우리 집은 왜 다른지에 대해 아이는 어른들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 대해 어른들이 둘러대는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규모나 삶의 질의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꽤나 높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나쁘지 않는 삶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다름에 대한 포용적인 사회문화적 가치관이나 그걸 형성하게 되는 개인의 가치관이 어디쯤일까 한번 돌아보게 된다.
성별고정관념이 낮으면 낮을수록 개인의 삶의 행복도와 경쟁력은 높아진다고 한다. 이는 곧 사회 문화적 가치관으로 확장되면서 다름에 대한 이해도 형성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올해 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초유의 저출산 쇼크에 맞닥뜨린 지금, 우리는 국가적 위기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결혼과 출산, 이어지는 양육 등 이 모든 것이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고 그 근본 원인은 그저 경제적인 이유라고 우리는 말한다.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의 저 출산 쇼크는 여러 분야에서의 종합적인 이유가 작용을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고, 일정한 출산율에 도달하면서 인구문제에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결혼과 출산, 양육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부분과 사회문화적인 부분에서의 사회적 합의점이 바로 인구문제의 안정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아닌 가족의 건강성에 중점을 두고 아이의 양육을 부모와 사회가 모두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정책과 사회문화적인 가치관 변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남녀성비의 불균형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지난 7월 아시아인구학회장인 김두섭 교수는 한 매체를 통해 과거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두고 '당시 출생성비의 불균형이 최근 혼인시장의 왜곡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남녀의 차별이 성장과정에서 당연시 역할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게 되고, 어쩌면 사회가 다시 그들의 삶의 선택마저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시대가 변하면서 맞벌이는 당연히 여기지만 여전히 직장에서 여성을 그리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외치면서도 워킹 맘들의 워라벨은 외면하고, 또한 남성들의 가정에서의 생활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출산, 양육을 위한 국가적 정책을 말하기에 앞서 혹시 생활 속 내 모습은 어떤지 한번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성역할에 대한 구분이 지어지지 않는 우리의 사회 문화적 가치관 안에서 남녀가 가지게 되는 서로의 부담을 덜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는 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얻어지는 가족의 건강성 또한 우리에게는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결혼과 출산은 지극히 개인의 선택이다. 경제적인 이유를 뛰어넘을 만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이 개인의 선택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쉬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모습이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신소라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지회 인구교육 전문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