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31)는 4살, 2살 두 아들을 둔 전업맘이다. 아침 7시, 밥짓기를 시작으로 두 아이들의 등원준비가 시작된다. 9시 40분에 전쟁 같은 등원을 마치면 집에 와서 집안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시작한다. 대충 끼니를 때우며 빨래를 널다 보면 어느새 12시. 아이들 간식과 저녁을 만들기 위해 장을 봐오고 음식을 하다보면 3시가 훌쩍 넘어있다. 남편 와이셔츠 세탁물과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다보면 곧 아이들 하원 시킬 시간이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2. 4살 아들을 둔 워킹맘 B씨(35)도 하루가 빠듯하긴 마찬가지다. 남편에 비해 비교적 퇴근 시간이 일정한 B씨는 저녁 6시 집에 오자마자 빠르게 씻고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7시쯤 아이를 돌봐주던 사람이 귀가하면 그때부터 아이 밥을 먹이고 씻긴다. 중간에 아이에게 그림책이라도 읽어주려면 쉴 틈 없이 움직여야한다. 밤 11시, 아이를 재운 후 빨래를 하고 남은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한다. 12시가 넘어 겨우 한숨 돌리는 B씨는 녹초가 된 채 몸을 뉘인다.
독박육아. 남편, 또는 아내의 도움 없이 혼자서 육아를 도맡아 하는 것을 말하는 신조어다. 하루 종일 아이를 전담하는 전업맘이든 일과 아이 돌봄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워킹맘이든, 독박육아를 하는 엄마들에게 하루란 사는 것이 아닌 ‘견디는’ 것이다.
지난해 고용부가 OECD와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5%로, 조사 대상 OECD 26개국 평균(33.6%)을 훨씬 밑 돌면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이 낮은 주요 요인은 ‘그래도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아빠가 가사노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한국기업의 장시간 노동문화’로 지적됐다.
그나마 다른 가정에 비해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대체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A씨는 “그래도 (남편에게) 서운할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 맘 같지 않구나 할 때가 있어요. 내가 아파서 주말 아침 급하게 병원 가는데, 애들 밥까지 차려 놓고 가야 될 때..그냥 맘 편히 다녀오면 좋겠는데 밥 차리는 건 전적으로 엄마 몫 인거 같을 때가 있으니까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하는 독박육아는 ‘육아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쉽다. 하지만 빠듯한 하루 일정 속, 늘상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엄마들은 ‘애 엄마들은 원래 다 그렇게 살아’,‘엄마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냐?’라는 통념 속에서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다.
‘원래 감정표현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는 A씨 역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애들 앞에서는 화가 날 때마다 다 표현할 수가 없잖아요. 그걸 위협으로 느끼니까. 저도 사람이니까 일차적으로 화는 나는데 엄마로서 감정 컨트롤은 해야 하고..그럴 때마다 너무 힘들죠.”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가끔 몸이 아플 때는 ‘나는 아프지도 못하겠구나, 온전히 나한테 집중도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감도 느낀다고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엄마의 우울감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1년 영국 리딩 대학의 린 머리 박사가 육아우울증을 겪은 여성을 포함해 총 100명의 여성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육아우울증을 겪었던 여성의 자녀 41.5%가 성인이 되어 우울 증세를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양육현실에 대해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아이 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혼자 양육하는 엄마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가장 가까운 남편을 비롯해 주변 친지,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곽 교수는 “특히 어린 아이들일수록 양육자와의 교감이 중요하다”며 “양육의 부담을 홀로 지고 있는 엄마의 우울감은 자극과 반응으로 발달을 이뤄가야 할 아이의 정서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남편들이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기업문화”라며 정부차원의 과감한 육아정책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또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사회 전체의 인식과 문화가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변화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진경 키즈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