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 하면 반복되는 먹거리 파동. 지난해 살충제 달걀, 간염 소시지, 구충제 닭고기 등 연이은 식품 파동으로 인한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거진 ‘대구 수돗물 유해물질 검출’ 논란은 다시 한번 온 국민을 불안케 했다.
수돗물 파동이 본격화된 지난 22일, 불안한 대구 시민들은 급한 대로 생수 공수에 나섰다. 생수를 사기 위해 이어지는 사람들로 마트에 있는 생수는 어느새 동이 나고 급기야 때아닌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대구 수돗물 사태로 식수마저 안전 비상에 걸리자, 사회 한편에서는 적절한 대응은커녕 무분별하게 유해한 환경 가운데 적나라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핵심적 피해자로 빈곤 가정의 아동을 꼽았다. “(이번 사태의 경우, 아이 스스로)선별하기도 어렵고, 대체자원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물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면 오염된 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후일의 건강보다 선제 되는 취약계층 아동에게 이번과 같은 예기치 못한 식수 사태가 발생할 경우, 발암물질이 있는 걸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선택의 여지 없이 오염된 물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측을 배제할 수만은 없다.
◆반복되는 취약계층 아동의 건강불평등
정 교수는 <키즈맘>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동은 모든 위험에 가장 취약한 대상”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수돗물 사태뿐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사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아동들은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직관이 스쳤다.
어른의 도움이 부족하고 선택의 폭이 좁은 취약계층 아동의 경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었을까? 사건을 바라볼 때 이 아이들이 상황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나 장기적인 계획과 즉각적인 대처를 하기에 아이들은 어리고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비단 수돗물 논란뿐 아니라 아동을 둘러싼 전방위적 사회적 이슈에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단순히 학대, 차별을 넘어 촘촘히 엮어진 사회관계 안에서 소외와 방임 역시 사회적 폭력이라 정의해본다면 아이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폭력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
어른들의 무관심과 소외 속에 보낸 아이들의 지금 이 시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라고 말한다. 개인의 사회적 경험에 따라 인간은 누구나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그 시간을 몸속에 새겨가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듯 생애초기의 경험을 강조하기 위해 고전적으로 일컬어지는 바커 가설(태아와 신생아일 때 건강이 미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외에도 최근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아동기 부모의 결손, 사회 경제적 여건의 악화는 아동기 전반에 걸쳐 아동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연구결과가 힘을 싣는다.
즉, 개인의 질병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으로 인해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특성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취약하고 사회환경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 아동에 대해 공동체적 책임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아동기 건강불평등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사회의 책임이 강조되는 까닭이다.
앞으로 이런 반복적인 상황이 아동기 건강불평등 문제를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꾸준한 관심과 돌봄이 요구된다. .
빈곤이 정보의 빈곤으로, 그리고 선택의 빈곤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아이들은 오늘날 어른의 선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볼 차례다.
오유정 키즈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