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하듯 전적으로 감각에 의지하여 집어 든 책은 다름 아닌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넘긴 책장. 이게 웬일이람. 사회적·정치적 원인을 밝히는 사회역학을 도구 삼아 사회적 경험이 어떻게 우리 몸에 스미고, 병이 되는지 집요하게 추적해 나가는 김 교수의 발자취는 한여름 밤 추적 스릴러 보다 감흥 있었다.
그는 저서에서 개인의 질병을 둘러싼 혐오발언, 구직자 차별, 가난, 참사를 다루며 '사회의 변화 없이 건강해질 수 없는 개인'에 대해 날카롭게 짚어내며, 개인의 몸, 곳곳에 투영된 사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음을 묻는다.
1950년대 당시 45달러였던 국가재정 파탄 위기 불모지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높은 소득 수준을 넘볼 만큼 높은 경제수준을 일궜다. 그에 반해 결식아동의 실태는 모순적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사각지대 빈곤가정의 아동은 약 67만 5천명, 그중 제때 식사를 못하는 아동은 보통 10명 중 4명꼴이다. 영양섭취 부족의 경험을 하는 아동들 또한 10명 중에 절반을 차지한다.
지자체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결식아동의 경우, 방학 중에는 한 끼 평균 3~4천원 정도의 급식카드를 이용할 수 있지만 급식 카드를 달가워하지 않는 몇몇 상점 때문에 눈치 보기 일쑤다. 그러나 이마저도 소년소녀가장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결식아동이지만 잘 몰라서 지원 받지 못한단다.
마주한 모순적인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말 뿐인 ‘우려’를 표하고 국가적 책임을 묻고 사회적 구조를 쉽게 지탄하면 우리의 책임은 전가한 채, 눈 감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결식아동이 10명 중 5명이라는 사회의 역설은 비단 결식아동만이겠는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만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사교육을 받는 청소년 1인당 일주일간 사교육 시간은 평균 9시간26분, 초등학생이 8시간38분, 중고생이 9시간59분이었다. 과열된 사교육은 높은 교육열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런 교육열에 장애 학생이 끼어들 자리는 여의치 않은가보다.
지난해, 고성이 난무했던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를 기억한다. 지역 이권을 위해 한방병원이 들어서길 바라는 지역주민과 특수학교 설립이 절실했던 장애아 학부모. ‘특수학교 설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 뿐인 말을 내뱉은 특수학교 반대주민비상대책위는 장애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가로막았다.
이권을 더 챙길 수 있다면 아동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은 쉽게 터부시하고 외면했던 행동이 아이들의 몸에 사회의 어떤 시간을 새기고 있을지 예측이나 할 수 있을까.
사회는 끊임없이 모순을 낳고 역설을 말하지만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아직은 작지만 미래의 큰 사람이 될 아이들에게 어른은, 부모는 보다 치열하게 '공동체적 책임'을 느끼고 행동하며 아이들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좋은 ‘남의 부모’는 사회적 선은 이루고 연대를 이뤄간다. 다른 아동을 보호함과 동시에 내 아이를 보호하고 다른 아이의 부당함에 같이 분노할 때 우리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조금은 더 공평해질 것이다. 오늘날의 이타적인 삶에 곱씹어 본다.
오유정 키즈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