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갹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뿅갹이의 첫 친구인 서아의 엄마가 회사에 복귀할 시기가 가까워오자 나는 서둘러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낮시간을 함께 보내며 동고동락해왔는데 갑자기 서아가 어린이집에 가버리면 남은 뿅갹이도 매우 허전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같은 어린이집에 등록했고 둘은 같은 반이 되었다.
그곳에서 뽕갹이는 서아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알게 되었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 이제 돌을 갓 넘긴 아이들끼리만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매일 등 하원을 하며 눈에 익는 엄마들이 생겨났고 자연스레 연락처를 교환하며 하원 후에도 함께 모여 노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엄마의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동갑이면 엄마들끼리도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각자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된 지금도 엄마들끼리 연락을 지속하며 따로 또 같이 모이곤 한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이의 사회생활에서 주도권이 바뀌었다. 주변 엄마들을 통해 뿅갹이와 매일 붙어 지내는 친구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둘이 제법 친하게 지내는 눈치였다. 엄마를 인간관계를 거치지 않고 온전히 자기의 의지로만 맺은 첫 번째 친구이기에 나 역시 그 친구가 매우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뿅갹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오늘 밝음이랑 만나기로 했어"
"…응? 엄마는 밝음이 엄마 연락처도 모르는데?"
놀이터에서 한 번 우연히 만나 말을 섞었을 뿐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다.
"밝음이네 집 바로 저기야. 내가 알아. 우리 진짜 만나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당장 만나야 한다며 계속 채근해대는 탓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밝음이 엄마와 같이 있던 다른 엄마들의 기억을 더듬어 세 다리 정도 건넌 후에야 밝음이 엄마와 연락이 닿았다.
"안녕하세요, 뿅갹이 엄마인데요. 둘이 오늘 만나기로 했다고 채근해서 연락드렸어요"
안 그래도 밝음이도 뿅갹이와 집에서 만나 놀기로 했다며 성화인 중이었다고 했다. 집에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선 불나는 청소와 엄마에게도 약간의 몰골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 턱이 없었다. 결국, 밝음이 엄마와의 중재 끝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유치원에서도 온종일 붙어 다닌다던 아이들은 그래도 할 것이 많은지 서로 얘기 나눴던 장난감을 들고나와서 바꿔서 변신시켜보며 즐거워했다.
그 후에도 뿅갹이는 하원 후 스케줄을 주도적으로 잡기 시작했다. 둘이 유치원 차에서 오늘 무얼 할지 매일 상의한다고 했다. 둘이 만나면 유치원에서 내내 같이 있었음에도 두 손을 맞잡고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다. 그 동안 내가 친구를 만들어주는 입장이었다면 뿅갹이가 먼저 관계를 맺고 엄마들을 친구로 만든 첫 사례다.
새삼 아이가 훌쩍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나도 밝음이 엄마와 가까워져 좋은 친구가 생겼다. 아이가 내게 친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조성해주는 영역을 넘어 스스로 친구 관계를 맺고 함께 무엇을 할지 까지 개척하는 아이에게 조력자로서 좋은 풀밭을 가꿔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육체적인 걸음마에서 이제는 정신적인 첫 걸음마를 뗀 아이의 첫발을 있는 힘껏 응원하고 싶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 위 기사는 <매거진 키즈맘> 9~10월호에 게재되었으며 더욱 다양한 요리 레시피와 자세한 내용은 매거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