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당연하지만,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 역시 당연할까요?
5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사귀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잠시 집에 올 수 없겠냐"는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남자의 직감으로 '이거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라고 느꼈죠. 그때 다른 스케줄로 어딘가에 가는 중이었지만, 차를 돌려 여자친구에게 갔습니다. 여자친구는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였고, 제게 빨간 두 줄을 보여주었습니다.
'아! 역시!' 평생 처음 겪어 본 상황이었지만, 엄청나게 태연한 척 노력하면서 여자친구를 안심시켰죠. 굉장히 축하받을 일이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된다고요. 사실 저는 당시에 결혼 시기를 고민 중이었습니다. 총각들이라면 한번쯤 해볼 '아직 사회적으로 견고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결혼해도 되나'하는 보편적인 두려움이 제게도 있었죠.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냥 지금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게 그 여자친구는 지금의 아내가 되었고, 우리 딸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행복합니다. 저는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을 세 가지 꼽으라면 라식, 치아교정, 그리고 결혼이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용기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우리 딸이 너무 사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이유야 어찌됐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이런 생각은 해 보셨나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 역시 당연할까요?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날 사랑해야 해'라는 사고방식은 무리가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도 아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제 육아의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이 바로 이겁니다. 내 아이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이와의 소통, 관찰 등에 시간을 많이 들이고, 급해도 화내지 않고 여유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힘들고 귀찮아질까 봐 체력도 잘 관리합니다. 아이들은 활기찬 사람을 좋아하니까요.그리고 쉽게 약속하지 않는 대신 아이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아이가 절 사랑하더라고요.
아이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면 신기한 효과가 생깁니다. 아이가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제 말을 더 잘 들어 주는 거에요. 일종의 연예인과 팬의 관계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을 더 잘 들어주고 따르고 싶은 관계가 형성되더란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죄를 지어도 좀 더 봐주고 싶은 그런 마음. 아이에게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어디선가 "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같은 소리가 종종 들려옵니다. 어쩌면 아이가 엄마, 아빠의 말을 잘 듣고 싶을 만큼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게 하고 싶다면, 혼내기보다 부모를 사랑하게 만드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인 육아법이라 생각합니다.
이정수
방송인
2010년까지 다수의 연애
2011년 나쁜 남자 졸업
2013년 행복한 결혼
(現) 행복한 결혼에 대해 이야기 중
위 기사는 <매거진 키즈맘> 3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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