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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둘째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입력 2017-09-30 19:17:40 수정 2017-09-30 19: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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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예정일이 언제에요?" 와 더불어 "둘째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일 것이다. 워낙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큰아들을 둔 덕에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럴 때면 왠지 미간에 힘을 살짝 쥐고 팔자 눈썹을 만든 채로 대답하게 된다.

"아.. 아들이요."

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아이고, 엄마가 힘들겠네."

아들 둘 키우기란 보통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치는 것 또한 익숙히 보아온 제스처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조리원 갈 거예요? 애 낳고 조리할 때 첫째는 누가 봐요?", "딸 가지려면 셋째도 낳아야겠네" 등이 있다.

이전 칼럼에 쓴 적이 있었던 것처럼 남편은 준비된 딸바보였다. 물론 첫째가 아들인 덕분에 그 희망은 깨졌지만 남편 말로는 뿅갹이는 자신이 아들로부터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기쁨을 안겨주는 존재라 전혀 아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 남편조차 둘째는 딸일 거라는 확신이 온다며 다시 딸 바라기를 시작했었다.

때를 거슬러 임신 16주, 뱃속 아이의 성별을 확인하는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입덧 중에 얼큰한 국밥이 자꾸 당기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남편은 무슨 확신이 드는지 딸일 거라며 콧평수를 한껏 넓힌 채 함께 진료실로 들어섰다. 드디어 침대에 눕고 초음파 기기를 들이대는 순간, 하얗고 선명하게 보이는 그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자, 공주님일지 왕자님일지 우리 아빠에게 물어볼까요?"

의사의 질문에 남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외면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고추의 형상이 초음파 화면에 떡하니 나와 있었다. 남편은 끝내 입에서 '아들'이라는 정답을 내뱉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다리에 힘이 풀려 병원 소파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남편을 향해 입꼬리를 씨익 당기며 속삭였다.

"여보, 난 두 번의 기회를 줬어. 둘째는 딸일 거라며. 못 이룬 건 당신이다."

남편은 친한 부부가 얼마 전 셋째를 가졌는데 셋째도 아들이란 소식에 절망한 그 집 아빠와 함께 주말마다 남의 집 공주님들을 보며 한없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남의 집 귀한 딸'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이 날 때가 없다고 했다. 아들 둘이 있는 집의 경우, 셋째도 아들일 확률이 8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집들은 정말 복 받은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둘째의 성별도 아들인 것에 큰 불만은 없다. 장난감이나 옷 같은 것을 많이 공유할 수 있기도 하고 욕실에 몰아넣고 함께 씻긴다든지, 레고 방에 아빠와 함께 셋을 보내 놓고 혼자 즐길 여유시간 같은 것을 상상하면 오히려 수월한 면도 많을 것 같다.

집에 아들이 둘임으로써 가장 걱정되는 것은 둘이 만나서 더 거칠게 놀기 시작하면 벌어질 일상이다. 온종일 소리 지르며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외치느라 쉬어 있을 나의 목과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에 피해가 갈까봐 늘 죄인같은 심정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마음 같아서는 아파트가 아닌 너른 들판에 우리 집만 있는 곳에 가서 살면서 온종일 뛰어놀게 하고 싶다. '싸움놀이'하자며 거칠게 달겨들 아들 둘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너덜너덜해질 내 몸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스스로가 안쓰럽다.

남편은 아직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초음파를 볼 때마다 다리 사이의 그것은 굉장히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딸과 함께 샤스커트에 발레리나 플랫을 커플룩으로 입고 외출을 한다든지 아침마다 머리를 예쁘게 땋아 깜찍한 머리핀을 달아준다든지 하는 아기자기한 일상은 없다는 것이 왠지 아쉬운 건 사실이다. 쇼핑을 나가도 나는 이제 항상 아들 옷만 사야겠지. 나이 들수록 엄마에겐 딸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말에 나는 이제 딸이 없는 인생을 살 텐데 그게 어떤 기분인지 평생 모를 거란 생각에 한쪽 구석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이 칼럼을 통해 못 박아두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사전에 셋째는 없다. 사실 뿅갹이가 아들이지만 애교도 많고 내 마음을 이해하는 예쁜 소리를 할 때가 많아서 아직은 그런 단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지는 않다. 두 아들을 공감능력 넘치는 남성으로 키우는 데에 주력해야겠다. 어차피 정해진 성별을 받아들이고 남자 셋과 함께 사는 인기 많은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받아들여야겠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7-09-30 19:17:40 수정 2017-09-30 19:17:40

#칼럼 , #심효진 ,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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