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여름 감기를 호되게 앓았다. 임신 중이라 에어컨을 계속 틀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한여름에 감기를 제대로 앓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목과 귀는 말라가니 죽을 노릇이었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몸에만 선풍기 바람이 오도록 하면서 따뜻한 물을 마셨다. 그래도 몸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밤새 기침을 해대는 통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뿅갹이에게는 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멀쩡해 보였던 뿅갹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이마가 아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뿅갹이가 말했다. 뿅갹이의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 며칠 갈 것만 같았다.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머리에서 땀을 뻘뻘 흘린다. 엄마에게 안기겠다며 기대올 때마다 뜨거운 몸이 안쓰러우면서도 우선 내가 더웠다. 땀으로 젖은 아이의 머리칼을 넘기면서 보니 말간 얼굴에 쌍까풀이 짖게 졌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직접 죽을 끓이겠노라며 나섰다.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고 냉장고 속 재료들을 둘러보더니 우선 쌀을 불리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한참을 재료를 다지고 끓이는 남편 덕에 고맙지만 정말 더워 죽을 뻔했다.
그냥 사다가 먹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불 앞에서 요리하는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을 읽어달라며 자꾸만 내게 몸을 치대는 아이의 뜨거운 몸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장장 한 시간 반이 조금 더 지났을까, 마침내 남편이 준비되었다고 우리를 불렀다.
“이래서 죽을 죽이라고 부르는구나. 끓이다가 내가 죽을 것 같네.”
생애 첫 죽을 땀으로 끓여낸 남편의 소감이었다. 기운이 없어서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아빠의 정성에 대해서 설득해가며 반쯤 협박을 섞여서 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 때 아이는 왈칵 다 토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서둘러 아이를 씻겼고 남편은 바닥에 펼쳐진 두 시간의 노력을 걸레로 훔쳐내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아이는 해열제 효과가 떨어지면 열이 올랐고 그럴 때마다 약을 먹였다. 어린이집도 빠지고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다행히 큰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선생님 말씀에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그 이후로도 어린이집을 빠졌고 수요일쯤 되었을 때 나 역시 지쳐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제 제법 기운을 차린 아이는 내게 놀자며 방문을 열고 다가왔다.
“엄마, 놀자! 아침이야, 밖이 밝아.”
대꾸를 거의 하지 않는 나를 지쳐보던 아이는 밖으로 나가 방문을 닫아 버렸다.
똑또또독, 문을 두드리던 아이는 노래를 시작했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아니면 자전거 탈래?
엄마들 만날 수 없어. 같이 놀자. 나 혼자 심심해.
그렇게 친했는데 이젠 아냐. 그 이유를 알고파.
같이 눈사람 만들래?”
문구멍에 아이가 입을 바짝 갖다 대 입술이 눌린 채 이어 불렀다.
“눈사람 아니어도 좋아.”
‘저리 가, 뿅갹’이라고 장단을 맞추어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저리 가’라고 말하기가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저리 가, 뿅갹.
그래, 안녕!”
혼자 내 몫까지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래한 뿅갹이가 자기 방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을 상황에 맞춰 적용할 줄 아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드디어…뿅갹이가 기운을 차리고 어린이집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잔기침 만을 남기고 거의 나아가고 있다. 오늘은 제법 선선해진 바람에 놀이터에서 잠깐 놀았다. 아직 체력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는지 금세 집에 가자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 들어와 죽이 아닌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가을이 오고 있는 지금, 아픈 뒤 우리는 한층 성장했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