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DB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드 ‘위기의 주부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들을 낳으면 고추 하나만 걱정하면 되지만 딸을 낳으면 온 동네 고추를 걱정해야 한다”
성범죄에 있어 강한 형량을 부과하는 미국에서조차 드라마에 저런 대사가 등장할 정도인데 상대적으로 성범죄에 관대한 한국의 경우 딸 가진 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자식이 딸이라면 머리 위에 이고 다니면서 동네 사내놈들이 눈도 못 마주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에 반해 아들 가진 엄마들은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성범죄로 인해 걱정할 일은 없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많다.
성범죄에 있어 가해자는 주로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뱃속의 태아가 여성임을 확인한 순간부터 내 딸이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하고 평생을 불안에 떨면서 살아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남자아이의 부모들은 그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충격을 준 세종시 유치원 내 집단 성추행 사건의 보도에 따르면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에게 “엄마에게 말하면 총을 쏘겠다. 내일은 치마를 입고 와라”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해 아이들의 말만 들어보아도 이건 단순한 유아 수준의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건에 대해 해당 유치원 원감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호기심 정도로 사건을 축소하며 아이들 간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성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반응해 공분을 샀다. 이런 유치원 내 성추행사건들은 의외로 자주 발생하고 있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으슥한 곳에 밀어 넣고 성기를 포함한 몸 곳곳을 만진다든가 묶어 놓고 돌아가면서 추행한 후에 부모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모습이 단순히 어린 아이들의 행태로만 보기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아이들은 야동(야한 동영상)과 같은 자극적이고 그릇된 어른들의 문화에 빨리 노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아동 성범죄의 양상도 점점 더 어른들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언제까지고 딸을 가진 부모들은 피해자로 울부짖고 아들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사고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관계자들은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해하며 간과할 수는 없는 문제다. 이에 관해 아들 가진 부모로서 고심이 깊어진다.
시작부터 잘못된 ‘아이스케~키’
어릴 적 치마를 입은 날이면 공주님이 된 것 같은 생각에 발걸음도 사뿐사뿐하게 외출하고는 했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당하고는 했던 ‘아이스케~키’. 동네에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치마 입은 또래 여자아이들을 표적으로 치마를 들치며 좋아하고는 했다.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났지만 어른들에게 이르면 “ㅇㅇ이가 널 좋아하나 보다”라며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기를 바라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내가 감정에 솔직하게 화를 냈다가는 흔한 장난에 과민하게 대응하는 앙칼진 여자애가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른들이 보여야할 것은 여자인 네가 참으라는 반응이 아니라 아이들의 작은 성적 장난도 진지하고 단호한 대응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며 어른들의 반응에 기민하게 대처한다. 비록 그 시작은 작은 성적인 호기심일지라도 어른들이 용인해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점점 그 정도가 강해질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이들을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키울 수 있는 불씨가 된다.
‘사내 녀석은 ~ 여자애들이라~’
잘못된 젠더 교육이 아이들을 망친다
“여자애들이라 역시 잘 삐져.”
“힘이 센 걸 보니 역시 남자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젠더(사회적인 성)에 관해 고정관념을 주입받았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으로까지 지정해주며 아이들은 좋아하는 색을 자유롭게 택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가 교육받은 바에 의하면 여자는 힘이 약하고 잘 삐지며 쉽게 우는 연약한 존재다. 남자는 힘이 세고 의지가 굳으며 대범한 존재로 묘사된다.
사실 아이들의 타고나는 본성은 저마다 다를 텐데 사람들은 고정된 성 역할에 맞는 행동을 조금만 보여도 ‘역시’라는 수사를 동원하여 올바른 성 역할을 하고 있음에 아이를 끼워 맞춘다. 오히려 여자인데 주장이 강하고 힘이 세거나 남자인데 유약하고 눈물이 많다면 어른들이 조성한 젠더의 영역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음을 탓하여 본성을 꺽으려 든다. 이는 아이들의 자율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에 보면 ‘남성의 성적 충족은 당연한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고 기재되어 있다. 공식적인 교육 자료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은 이성이 있기에 동물과 구분되는 것인데 이는 남성을 성욕 하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짐승과도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사회적인 인식이 팽배해지면 남자의 성욕은 풀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 논리에 의해 성매매도 당연히 인정해줘야 하며 전쟁 중의 위안부 동원 문제까지도 당위성을 얻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치달을 수 있다. 올바른 성교육의 부재 자체도 아쉬운데 이렇게 그릇된 성교육 매뉴얼로 교육을 받는 우리의 아이들이 안타깝다.
‘여성은 노출하는 옷을 입으면 안 되고 밤늦게 길을 다녀서도 안된다’
‘여자가 모텔에 함께 들어갔다는 것은 사실상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다’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행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하게 들어왔던 피해자 탓의 내용들이다. 위 문장들 어디에도 가해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성폭행과 관련한 미국의 유명한 판례가 있다. 성폭력 가해자의 검사가 움직이는 콜라병에 연필을 꽂을 수 없다며 성폭행에 끝까지 저항했더라면 성폭행은 불가능하다고 하자 상대 검사가 병을 깨고 연필을 꽂아 넣으며 이것이 성폭행이라고 한 사건이다.
사회는 아직도 남성 중심적으로 치우쳐져 있고 대부분의 아들 가진 부모들은 기득권의 입장이다 보니 이에 대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모 역시 잘못된 젠더 교육을 받고 자라나 여자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코르셋을 씌우거나 남자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방종을 허용하는 잘못된 선례를 답습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이 더욱 아름답고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어떤 부모도 내 자식이 억울한 피해자가 되거나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가해자가 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세대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한다. 아직 이런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의 인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 아이들이 그릇된 미디어에 어린 나이부터 노출되고 있고 실제로 모방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들 가진 부모도, 딸 가진 부모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한마음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