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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엄마가 미안해" 코르셋을 꽉 조이는 엄마들
입력 2017-06-23 10:20:01 수정 2017-06-23 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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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미안해.”
“엄마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더 맛있는 것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미안해.”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주변의 엄마들이 아이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엄마들은 수많은 이유로 아이에게 사과를 달고 산다. 하지만 그 말을 귀 기울여 보면 개중에는 진짜 사과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버느라 바쁜 것인데 왜 아이에게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엄마는 오히려 기형적인 집값과 정시퇴근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의 희생양이다. 그 외에도 엄마들은 근원적인 죄책감으로 혹은 아이가 떼쓸만한 상황을 쉽게 무마하기 위해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에게 덮어놓고 사죄하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남발하는 사과는 아이에게 혼란을 심어줄 수 있다. ‘왜 엄마는 나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하지?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항상 미안하기만 한 부족한 사람인가 봐’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엄마 본인의 정서에도 좋을 리가 없다.

남성 중심사회에서 자라난 여자들은 어릴 때는 참하고 조신해야 할 것을 덕목으로 강요받고 자라왔다. 또한 결혼하는 순간 적성과는 무관하게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 여자라면 어느 정도 살림을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손님이 왔을 때 보여줄 요리비법 두세 가지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남자가 아이에게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해주는 날에는 ‘아이를 위해 요리하는 자상한 아빠’이지만 엄마가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 하나만 올렸다가는 ‘아이에게 영양결핍을 초래하는 천하의 나쁜 엄마’ 취급을 당할 것이다.

사회적인 시선도 문제지만 이런 시선이 내면화되어 자신을 지나치게 검열하는 엄마들이 상당수다. 인터넷 신조어로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코르셋’이라고 부른다. 여자는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는 등 갖가지 프레임으로 여자들에게 코르셋을 입히고 있는 상황을 부르는 것.

엄마들은 그에 더해 회사 일도 잘하고 집안 일도 잘하며 아이들도 알뜰살뜰 챙기는 슈퍼맘이 되어야 한다고 ‘셀프 코르셋’을 꽉 조이고 있다.

이들은 프로주부들이 운영하는 파워 블로그를 찾아보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반성한다. 유기농 식재료로 정성스레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엄마도 배달 이유식을 이용하는 엄마도 모두 각자의 사정에 맞춰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을 뿐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들이다.

엄마들이 조금은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엄마도 엄마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서툰 것 투성이며 모성애라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더 당당해도 된다. 엄마로 노력하고 있으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진짜 사과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아이와의 약속을 실수로 까먹었다든가 아이 몰래 장난감을 버렸는데 들켰다든가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 역시 몸이 피곤한 나머지 평소라면 크게 화내지 않았을 상황에서 아이에게 짜증을 담아 소리를 친 적이 있다. 이런 경우,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엄마가 아까는 몸이 너무 피곤해서 뿅갹이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고 말았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뿅갹이가 고집을 부리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건 엄마에게도 힘든 일이야. 우리 앞으로는 서로 배려하면서 지내자.”

사과 이후에는 엄마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나야만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불필요한 사과를 남발하지 않고 꼭 필요한 순간에만 아이의 자존감을 깎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사과할 줄 아는 ‘사과의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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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3 10:20:01 수정 2017-06-23 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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