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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지카 바이러스 위로 날아간 세부
입력 2017-05-24 17:01:01 수정 2017-05-25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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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 라면 세부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선 베드에 누워 있고 옆에서는 뿅갹이가 신나게 모래 놀이를 하고 있어야 할 지금, 나는 식탁 한쪽 구석에 앉아 칼럼을 쓰고 있다.

둘째가 생긴 지 드디어 15주차가 됐고 나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한동안 가족여행은 꿈도 못 꿀 거란 생각에 임신 기간에 어디라도 가자며 성화를 부렸다. 그 외에도 명분은 다양했다. 남편은 신혼여행 이후에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 간 상태였고 남편과 나, 뿅갹이 셋이서 여행을 간 적이 없던 터라 이번 기회에 어디든 꼭 가자며 다들 고무돼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좋아하는 뿅갹이와 함께 따뜻한 나라에 가서 온종일 수영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셋만의 온전한 휴식을 누리고 올 심산이었다.

남편과 나는 뿅갹이를 재우고 여행 관련 사이트를 알아보다가 날짜가 임박한 여행 상품이 저렴하게 나온 것을 발견했다. 소위 말하는 '땡처리' 상품에 우리의 눈은 커졌다. 에어텔이라 전 일정이 자유인 것도 마음에 쏙 들었기에 서둘러 예약 신청을 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세부의 바닷가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며 물고기들과 노닐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마감 임박 상품이라 1시간 내로 전액 입금하셔야 예약이 확정됩니다"

마음이 벌렁벌렁했다.

"여보, 입금할까? 어떡할까? 우리 드디어 함께 가는 거야?"

입금하고 나니 우리의 마음은 한층 더 들떴다. 막상 며칠 후에 떠나려고 보니 작아져버린 뿅갹이의 래시가드도 새로 사야겠고 남편이 쓸 챙이 넓은 모자도 하나 사야했다. 둘째라 그런지 벌써 제법 배가 나와서 임부용 수영복도 필요했다. 주말에 백화점에 들러 이것저것 사고 비상식량으로 햇반도 넉넉히 사놓았다. 며칠 집을 비우려니 미리 일 처리를 해야 할 것도 꽤 있었다. 은행에 들러서 환전도 하며 분주한 며칠을 보냈다.

드디어 출발 전날,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고 이제 짐만 싸면 된다며 차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때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세부도 필리핀이고 동남아인데 지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걸까?'


자세를 고쳐 앉아 부지런히 인터넷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 우리가 입금하고 기뻐하던 그 날, 필리핀을 다녀온 한국 관광객이 지카 바이러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내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 하필 필리핀이었던 걸까. 그걸 왜 입금 직전에 한 번 더 확인해보지 않았던 걸까. 얼마 만의 가족여행인데, 게다가 출발 하루 전날 위약금까지 물고 이렇게 취소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여보, 위약금을 못 돌려받는 건 정말 안타깝지만 취소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정말 낮은 확률이라 해도 만약에 당신이 모기에 한 방 물리는 날이면 그 순간부터 지옥같이 느껴질 거야"

한껏 들떴다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내게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울상을 지어봤지만 이내 머릿속에 한 장면이 그려졌다.

"…국내에서 최초로 지카 바이러스 양성판정을 받은 임신부가 발생했습니다. 감염자 심모 씨는 지난 달 필리핀 세부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장식되는 임신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위약금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지만 만에 하나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돼 노심초사하며 초음파로 뱃속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살필 생각을 하니 지금 고집을 피울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여행을 취소했고 남편은 나에게 조만간 안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남편을 위한 여행이라며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내가 더 고무되어 있었다는 것을 남편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 취소 직전까지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취소하고 나니 뜻밖에 담담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회야 또 만들어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위약금은…좋은 데 가서 비싼 거 먹고 쇼핑했다고 여기기로 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일상을 다시 살고 있다.
언젠가 가족 여행을 떠날 날을 꿈꾸면서.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7-05-24 17:01:01 수정 2017-05-25 10:00:00

#심효진 ,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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