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병원에 고1 남자 학생이 억지로 엄마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왔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하고 아이는 내가 왜 여기에 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아이는 학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며, 주변의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술과 담배를 배웠고 새벽 4시에 귀가하곤 했다. 내원한 당시 아이는 길거리에 있는 오토바이를 주인의 허락 없이 타다가 절도죄로 기소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8년 전에도 내원했던 아이였다. 학교에서 장난이 심하고 숙제를 잘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ADHD 아동이었다. 당시 ADHD 진단을 하고 약물 치료 및 상담 치료를 실시했다. 아이의 과잉 행동과 산만한 모습은 나아졌으나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왠지 모르게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아이 부모는 ADHD 약물 치료에 대한 염려를 무척 많이 하고 있었다.
또한 주변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면 기록에 남아 아이가 성장 후 취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독한 정신과 약물을 먹게 되면 대뇌에 이상이 생긴다, 성장에 지장을 받는다, 또는 아이가 정신과 약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는데 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느냐"면서 말려 그 아이 부모는 도중에 치료를 중단했다. 8년이 지난 후의 아이는 ADHD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2차적인 정신과 질환이 나타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아이는 ADHD와 품위 행동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됐다. 8년 전 필자는 아이 어머니가 치료를 중단할 때 아이는 ADHD이고 조기에 치료하면 경과가 좋으니 이대로 치료를 하거나, 정 사정이 힘들다면 약물 치료만이라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는 필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 문을 나섰다가 8년이 지난 후 치료를 지속하지 않은 것을 후 회하며 다시 필자 병원을 찾게 되었다. 약물 치료를 다시 시작했고 정신과 상담 치료를 병행했다.
이번에는 아이 어머니가 약물 치료에 대한 부작용을 호소하지 않았고, 정신과 치료 기록에 대한 걱정도 할 상황이 아닌 듯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상태에서 치료를 진행했다. 그러나 아이는 8년 전과 달리 치료에 순응적이지 않고 어머니에게 심한 반항을 보였고, 지속적으로 가출을 하고 새벽에 귀가하거나 약물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등 심하게 저항했다.
만약 8년 전이었다면 아이는 약물 치료를 제대로 받았을 것이고 모든 데이터가 입증하듯 키 성장에 지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자라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고 중퇴까지 이르지 않으면서 학교에 잘 적응했을지 모른다. 얼마 전 ADHD 아동의 10%만 약물 치료를 받는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는 바로 정신과 약물 치료에 대한 편견의 산물이며, 필자 또한 진료실에서 늘 경험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ADHD 약물 치료 효과는 이미 수차례 반복된 연구 논문, 그리고 눈부신 과학 발달에 힘입은 대뇌 영상을 통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또한 키 성장에 따른 약물 부작용 또한 미미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따라서 아이가 ADHD로 진단받았다면 치료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약물 치료다. 여러 가지 이유로 차일피일 뒤로 미루게 된다면 치료는 더 어렵게 되고 예후 또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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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現 사랑샘터정신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외래 교수
서울시 성북구 의사회 보험이사
대한 소아정신의학회 정회원
위 기사는 <매거진 키즈맘> 5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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