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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선거날의 풍경
입력 2017-04-19 10:52:00 수정 2017-04-19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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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선거일을 앞두고 뿅갹이는 몹시 흥분해있었다. 이번에 어린이집을 옮기는 바람에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던 동갑내기 친구 서아와 종일 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서아는 뱃속에 있던 태아 시절부터 알던 친구였다. 서아의 엄마와 나는 임산부 요가 교실에서 만난 것을 인연으로 지금까지 알고 지낸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서 아기 때부터 자주 함께 놀곤 했는데 서아의 엄마가 복직하게 되면서부터 만남의 기회가 현저히 줄었다. 엄마들끼리는 이제 자주 보지 못하지만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뿅갹이와 서아는 매일 만났기에 둘도 없는 단짝이다.

"엄마, 서아랑은 언제 만나요?"

며칠 전부터 연신 같은 질문을 하는 뿅갹이는 서아와의 만남이 부쩍 기대되는 눈치였다. 서아도 뿅갹이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뿅갹이가 보고 싶다 말한다고 전해 들은 터였다.

"엄마, 서아 오늘 우리 집에올 거에요? 서아 언제 와?"

수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뿅갹이는 이 질문을 시작해서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 질문을 정확히 백 한 번쯤 들었을 때 드디어 뿅갹이는 서아와 만났다. 아파트 정문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서아와 요구르트를 한 병씩 마시며 투표장으로 향했다. 워낙 아기 때부터 가깝게 지내서일까 몇 달 만의 만남이었지만 둘 사이엔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투표장은 동네의 한 초등학교였다. 학교에 도착하자 투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동네에서 가끔 보았던 익숙한 얼굴들도 눈에 띄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맨 끝에 줄을 섰다. 넓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마음에 드는지 뿅갹이와 서아는 신나게 뛰기 시작했다. 자꾸만 멀리 뛰어가는 통에 혹시 운동장에 들어오는 차와 부딪힐까 싶어서 멀리 가진 말라고 했다.

"뿅갹아, 너무 멀리 가지마. 위험해"
"엄마도 이리 와요"
"안돼, 엄마는 투표해 야해서 줄 서야해"
"그럼 투표 하지 마아"


실랑이를 몇 번 반복하다가 뿅갹이에게 말해주었다.

"뿅갹아, 이 한 장의 투표권을 갖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아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노력해서 오늘 같이 투표를 할 수 있는거야"

이제 겨우 갓 세 돌을 넘긴 아이에게는 어려운 개념이겠지만 농부가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 되면 추수를 해서 밥을 만들어 먹는 내용의 동화책에 빗대서 이야기해주자 조금은 이해를 하는 눈치였다. 사실은 그것보다는 투표 잘하면 손등에 도장 쾅 찍어준다는 말에 더 신속하게 반응했지만 말이다.

투표를 마치자 아이들은 아까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운동장 반대편 놀이터로 힘껏 뛰어갔다. 유난히 따사로운 햇살이 초여름 같은 날씨였다. 아이들은 처음 들어와보는 형아들의 공간이 무척 즐거운지 한창 신이 났다.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싸온 커피를 나눠 마시며 부모들도 오랜만의 수다를 떨었다. 어느덧 자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손을 잡고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제법 미끄럼틀도 타고 계단도 능숙하게 올랐다.

한참을 놀다 보니 익숙한 얼굴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어린이집 친구들이었다. 사는 곳이 비슷하다 보니 같은 투표장을 지정받은 모양이었다. 부모 손에 이끌려 투표장에 왔던 아이들은 생각지 못한 만남에 즐거워했다. 전업맘도, 워킹맘도, 평소에 얼굴 보기 힘든 아빠들까지 덕분에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 갓 50일이 지난 둘째를 안고 온 엄마도 있었다.

젊은 부모들이 투표장에 모여 있는 모습에 가슴 한쪽이 몰랑거렸다. 우리의 아이들이 커나갈 세상에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바꾸는 바탕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갓 스무 살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 엄마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장을 찾았던 십여 년 전의 그 날에서 이제는 나의 자식을 데리고 투표장을 찾은 오늘,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7-04-19 10:52:00 수정 2017-04-19 10:52: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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