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어린이 바둑교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흑백 바둑알을 집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전략을 짜며 상대 수읽기에 들어간다. 꼿꼿하게 세운 허리, 반짝이는 눈빛, 고심이 묻어나는 한 수까지…. 일찌감치 바둑 세계에 입문한 꼬마 기사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글 구채희 윤은경
치열한 두뇌싸움이 전쟁과 다를 바 없다고 해서 붙여진 ‘소리 없는 전쟁’ 바둑. 이 세계에 일찌감치 입문하는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 단순히 ‘응팔’ 최택을 꿈꾸는 바둑 꿈나무들이 아니다. 바둑이 유아 시절 두뇌발달과 정서발달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이에게 취미이자 놀이의 하나로 바둑을 교육하려는 부모들이 많아진 까닭이다. 전문가들 또한 6세 이상이 되면 바둑을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바둑 입문을 꿈꾸는 아이일수록 바둑과 친숙해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둑에 재미를 느끼는 순간, 바둑의 교육적 효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정원 프로기사는 “집중력, 예절교육 등 바둑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교육을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그러나 교육적 효과만을 노리고 바둑을 억지로 시키기보다는 아이가 바둑에 꾸준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유아 바둑의 효능
집중력 향상: 바둑은 승패가 정해져 있는 하나의 게임이다. 책상에 앉아 오랜 시간 집중을 못 하는 아이들도 바둑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한다. 대국을 할 때 매 수마다 집중하지 못하거나 친구와 장난을 칠 경우 게임에서 질 확률이 높다는 걸 아이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상대의 수읽기와 전략 의도를 파악하려면 자연스레 바둑에 몰입하게 되고 이는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창의력과 응용력 발달: 바둑판 가로 19줄, 세로 19줄에 생기는 변화의 수는 무한대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바둑을 뒀던 프로라도 매번 대국을 할 때마다 새로운 바둑을 두게 된다. 다양한 상대와 대국을 하기 때문에 수읽기 전략과 작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대국을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창의력과 응용력이 발달한다.
수리력 등 두뇌회전 활발: 바둑의 승패는 집의 많고 적음으로 판가름이 난다. 때문에 대국을 둘 때 상대방의 집과 내 집의 수를 눈으로 보고 계산하면서 암산능력이 발달하고, 몇 수 앞을 미리 보면서 생각을 하는 ‘수읽기’를 통해 수에 대한 개념이 잡힌다. 업계에서는 바둑 실력이 대략 15급 정도면 초등학교 1·2학년 수학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13급은 3·4학년 과정을, 9급이면 초등학교 수학 전 과정을, 7급이면 중학교 과정을, 5급이면 고등학교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암기력 향상: 바둑에서는 대국이 끝난 뒤 두었던 바둑 한 판을 다시 그대로 두어 보는 복기(復棋)를 한다. 한 판의 바둑 속에서 잘못 두거나 잘 둔 곳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많은 바둑돌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을 둘 때 한 수 한 수 생각하고 두었다가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이치다. 초보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바둑 실력이 늘어갈수록 복기 실력이 향상돼 암기력이 는다.
사회성과 예절교육 습득: 아이들이 바둑에 입문할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올바른 바둑 예절이다. 바른 자세와 행동, 상대에 대한 예의는 바둑의 기본이자 바둑을 가르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대국을 시작하기 전 인사를 나누고 단정한 자세로 바둑을 두되, 바둑돌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잡담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대국에 졌다고 불쾌해하거나 화내지 않고, 승부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도 기본 예절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놀이이기 때문에 다양한 친구들과 대국을 치르면서 사회성도 발달한다.
"로보트 보다 바둑이 좋아요. 바둑알 집는 것도 재밌고요." (최승서 6세)
◇ 자녀의 바둑 입문,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꾸준히 하기: 바둑의 효과는 무궁무진하지만 단기간의 체험식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바둑은 장기적 관점에서 아이의 두뇌활동이나 정서적 안정감에 도움을 주므로 이러한 효과가 몸에 체득될 때까지 부모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동기 부여를 해주면 좋다.
교육적 목적보다 흥미에 초점두기: 바둑의 효과만 듣고서 무작정 아이에게 바둑을 배우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가 바둑에 흥미가 있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집중력이나 암기력 등 학습적 효과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는 경우다. 이런 부모는 마음이 조급해서 아이를 채근하는 일이 잦다. 바둑을 배운다고 무조건 또래 아이보다 월등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교육의 출발점은 ‘흥미’다. 아이가 바둑을 즐기면 스스로 노력하고 개발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억지로 시키지 않기: 아이에게 바둑과 친숙한 환경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이들은 바둑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아이가 바둑에 재미를 느낄 때까지 기다리거나, 바둑교육을 잠시 중단해야 한다. 억지로 시키는 건 부모의 욕심일 뿐, 아이가 바둑을 통해 얻는 효과는 미비하다. 요새는 부모가 권유하지 않아도 방과 후 수업이나 친구를 따라 바둑에 호기심을 갖는 경우도 많으니 자연스럽게 노출만 시켜도 가능성이 있다.
◇ 바둑 입문, 이것이 궁금해요!
Q 바둑은 언제부터 배우는 것이 좋을까?
A 보통 한글을 읽을 수 있는 6세 이상이면 시작할 수 있다. 아이의 두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에 바둑을 통해 두뇌개발을 극대화할 수 있다.
Q 권장하는 바둑의 교육기간은?
A 적어도 최소 1년, 가능하면 2~3년 이상 꾸준히 배우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아이가 원할 때까지 바둑을 배우는 것을 권장한다.
Q 부모가 집에서 직접 가르칠 수 없을까?
A 부모가 직접 바둑을 가르친다면 정서적인 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바둑교육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워킹맘, 워킹대디라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Q 바둑의 급수는 어떻게 이뤄질까?
A 바둑의 급수는 18급부터 프로 9단까지다. 아마추어는 18급부터 시작해 17급, 16급 순으로 1급까지 나가고, 다음 단계로 아마 초단, 아마 2단… 아마 7단까지 있다. 전문 기사의 경우 프로 초(初)단부터 프로 9단까지로 구성된다.
"바둑에서 '틱틱' 소리 나는 게 신기해요. 헤헤." (이태인 6세)
◇ 바둑과 친해지는 놀이 5가지
➊ 바둑알 그림 그리기: 바둑판을 캔버스 삼아 흑백 돌로 그림을 그려본다. 점묘화를 그리듯 바둑돌을 나열해 선, 면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원, 삼각, 사각 등의 도형을 그리면서 모양, 길이, 면적 등 수학적 개념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➋ 바둑알 세기: 바둑알을 나열하면서 ‘하나, 둘, 셋’ 수세기를 하고 길이가 다른 선을 만들어 바둑알을 세어 보면서 ‘어떤 것이 더 긴지’ 알아본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수세기 개념이 길이, 면적에 적용돼 아이의 수학적 개념 이해를 돕는다.
➌ 바둑알 멀리 보내기: 일명 ‘알까기’로 성인들 사이에서 오락 거리였던 바둑알 튕기기 놀이. 바둑판에 출발선을 지정하고 바둑알을 손가락으로 튕겨 최대한 멀리 보낸다. 아이들은 이 놀이를 통해 소근육 발달 등 신체 조절 능력을 기를 수 있다.
➍ 바둑알 튕기기: 바둑알 멀리 보내기 놀이의 심화 활동으로 서로의 진영을 정하고 바둑알을 배치 후, 이를 튕겨 상대 돌을 바둑판 밖으로 쫓아내본다. 손가락 힘 조절뿐만 아니라 공격이나 수비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기 때문에 사고력 및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➎ 바둑알 따먹기: 흑과백으로 팀을 나눠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바둑판에 해당 색의 바둑알을 배열한다. 땅을 차지하듯 바둑알을 연결해 면적을 넓혀나간다. 높은 연령의 아이들은 심화 단계로 자유롭게 면적을 넓혀 나갈 수 있고 상대의 돌에 둘러싸일 경우 땅을 뺏기는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도움말 이정원 프로기사(이정원어린이바둑교실), (사)한국바둑협회
사진 김경림 일러스트 박주현
이 기사는 육아잡지 <매거진 키즈맘> 3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