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용어를 붙이자면 친정아빠는 그 옛날부터 프렌디였다.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 사이에서도 엄마가 상대적으로 더 바빴기에 부모님을 기다리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나를 깨우는 것은 항상 아빠였다. 잠에서 깨어나 아빠와 함께 근처 경양식집에 가서 비후까스와 돈까스를 주문해서 나눠먹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책을 보다가 책상에 엎드려서 잠이 들어있으면 책을 읽다 잠에 들었냐며 기특해하는 아빠의 모습에 일부러 아빠가 올 시간이 되면 책상에서 엎드려서 잠을 청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 함께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러가고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가곤 했다.
프렌디이기만 한게 아니라 아빠는 엄마의 내조도 열심히 하는 남자였다. 엄마가 늘 바쁜 것을 배려해 장보기나 집안일을 거의 아빠가 해왔다.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던 친구가 우리집 풍경을 묘사하기를 "너희 엄마가 신문 보실 때 너희 아빠는 청소기를 돌리다가 엄마 근처로 다가가면 엄마는 발만 살짝 들어서 비켜주시던데?"라며 발을 드는 흉내를 냈다. 겨울이면 이불을 두르고 신문을 보다가 아빠가 안방은 청소 다해서 창문 닫았다고 하면 또 신문을 들고 후다닥 안방으로 뛰어가던 엄마의 쉬는 날 풍경이 내겐 익숙하다. 늘 엄마의 차를 깨끗하게 세차해놓고 주유까지 가득해서 지하주차장에 도로 주차시켜놓는 것이 일상이다.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남자의 자존심 같은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늘 고생하는 것을 생각해서 하는 배려라고 여겨왔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났기에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접하면 더 숨이 막히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농담이었겠지만 우리집의 분위기를 아는 어른들은 나에게 저런 아빠 밑에서 자라서 나중에 왠만한 남자한테 만족 못하게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지난 주, 아빠와 나 그리고 뿅갹이 셋이서 여행을 다녀왔다. 남들은 친정아빠와 셋이 여행을 간다는 것이 생경한 조합이라고들 주변에서는 말했다. 친정엄마와 남편이 직장문제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우리 셋이라도 가기로 한 결정이었다. 3대가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혹시 뿅갹이가 여행 중에 열이라도 날까 싶어서 해열제를 세 통이나 챙기고 이것저것 상비약을 준비해갔다. 부인과 사위를 두고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웠던 아빠는 여행 내내 다음에는 다같이 오자는 말을 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뿅갹이의 미아방지가방끈을 꽉 쥐고 무사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함께 하는 첫 여행에서 아프지 않고 애만 안잃어버리고 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온통 붉은 등이 걸려있고 여기저기 울려대는 경적소리로 가득한 거리로 나오자 비로소 중국에 온 것이 실감났다. 하이난은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중국의 남쪽에 있는 큰 섬이다. 위도가 낮아서 겨울에도 물놀이를 할 수 있고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반 정도만 가면 되기 때문에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많다. 두어명의 자녀와 부부 혹은 거기에 조부모까지 더한 가족 구성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손주로 이루어진 우리의 모습은 그 사이에서 유독 단촐해보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당연히 아빠와 내가 부부인줄 아는 웃지못할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뿅갹이를 낳고 힘들어했을 때 친정아빠가 종종 봐주시고는 했는데 아기띠에 뿅갹이를 메고 다니는 아빠를 보고 간혹 뿅갹이를 아빠의 늦둥이를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환갑의 나이에도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빠와 역시나 그 나이대의 애들 답게 물놀이를 좋아하는 손주의 조합은 하이난에서 환상적인 콤비였다. 눈 뜨자마자 조식부터 먹고 바로 물놀이를 시작해서 첨벙 대다가 물에서 나오면 뛰어다니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모래놀이와 바다수영을 하고 한참을 놀다 배가 고파지면 저녁을 먹는 것이 우리의 일정이었다. 결혼 전에 다닐 때에는 당연한 휴양여행의 일정이었다면 아빠에게는 손주와 처음 온 여행에선 손주의 모든 행동들이 매우 인상 깊게 여겼다.
하루종일 물놀이를 한 탓에 저녁을 먹다말고 잠에 든 뿅갹이를 두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피곤하게 놀았으니 깨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나온 것이 실수였다. 내가 나간지 얼마 안되서 뿅갹이는 엄마와 아빠를 찾으면서 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시간을 계속 울었다고 했다. 로밍을 안해간 탓에 나에게 연락도 닿지 않아 아빠는 그런 뿅갹이를 달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돌아갔을 때는 뿅갹이가 이미 다시 잠에 든 후였다. 나는 뿅갹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엄마이지만 아빠에게는 아직도 철없는 딸이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난 뿅갹이와 아빠는 대화했다.
“어젯밤에 왜 울었어?”
“울고 싶어서.”
“또 울거야?”
“응.”
“또 울면 여기 다시 안데려올거야.”
“그럼 나 혼자 올거야. 할아버지는 오지마.”
유치뽕짝인 둘의 대화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품에 안고 다니던 손주가 어느덧 부쩍 커서 대꾸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빠는 이후에도 몇번이고 “너 진짜 혼자 올거야?”라고 되물었다. 뿅갹이는 혼자와서 밥도 먹고 물놀이도 하겠다고 했다. 아빠는 “너 아직 세상에 나온지 3년도 채 안됐는데 여길 혼자 오겠다고?”라며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고 손주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젊고 멋졌던 나의 아빠가 이제는 손주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손주가 귀여줘 죽겠다며 연신 볼을 만져대는 아빠의 귀 주변으로 살짝 자리잡기 시작한 검버섯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그동안 뿅갹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와서 노는 거보니 다 컸다. 더 크면 이제 자기 친구들이랑 다닌다고 할텐데 그 전에 우리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너무 신나게 노는 손주를 보며 아빠는 앞으로 함께 할 기회를 많이 만들자고 했다. 살다보면 좋은 건 나중에 해도 된다는 생각에 수많은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마는데 이제는 그러기보다는 한순간이라도 더 기억에 남을 행복한 순간으로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놀아줄 때 같이 놀아야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아빠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게 되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할아버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물총을 쏘아대는 뿅갹이와 군말은 커녕 오히려 즐거워하며 기꺼이 손주의 물총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TVN의 유명 프로그램인 ‘꽃보다OO’ 시리즈의 새로운 후속작인 <꽃보다 손주>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철없는 손주와 짐꾼 할배의 조합이랄까.
함께 모래놀이를 하던 아빠는 뿅갹이를 번쩍 안아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프렌디에서 프렌파(friend + grandpa)가 된 아빠와 뿅갹이의 둘 사이의 우정이 지금처럼 오래가기를 바란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