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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누가 엄마를 전쟁터로 내모는가
입력 2017-01-29 13:49:00 수정 2017-01-29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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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BS스페셜에서 3부작으로 방영한 '엄마의 전쟁'을 두고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내 얘기 그리고 옆집 철수와 영희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생각에 나는 일요일 밤마다 아이를 재운 뒤 각잡고 앉아 본방사수했다.

매주 엄마들은 방송 내용에 대해 술렁였고 또한 엄마들의 전쟁을 표면적으로 공론화 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구성이 너무 들쭉날쭉했으며 중구난방 식의 보여주기만 나온데다 1 m의 기적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맞벌이 가정에 외동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여자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교육받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거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성차별에 대해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들었을 때도 아니고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아니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녀차별이라곤 전혀 없이 키워주셨던 나의 부모 입에서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집의 가장은 네 남편이다" 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윽고 아이를 출산하고 엄마의 입장이 되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육아'라는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 그곳에서 신음하는 동지들을 생생히 보면서 세상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느꼈다.

'엄마의 전쟁'에는 명문대 경영학과 동문 커플인 양정아씨의 사연이 나온다. 이 두 사람이 대학 졸업 때까지 그려온 삶의 궤적은 비슷했다고 다큐는 말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양정아씨는 세상에 둘도 없는 죄인으로 전락한다. 아이들에게는 바쁜 직장인이어서 미안하고 회사에는 야근을 꺼려하는 아이 엄마라서 미안하다. 하지만 꼬여버린 돌보미 선생님들의 스케줄표에 점심도 못먹고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것은 양정아씨 혼자다. 퇴근 후에도 양정아씨는 집안일에 여념이 없지만 그 옆에서 남편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남편은 가족을 위해 회사에서 굵고 길게 가고 싶어 늦은 시간에도 공부를 한다고 말한다.

여자에게는 출산 후에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두껍기 그지 없는 유리천장 때문에 남편이 커리어를 오래 가져가는 쪽으로 전략을 짠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아무도 여기에 사회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오히려 양정아씨에게 본인은 여자인지 엄마인지를 물었고 그녀는 둘 다 아닌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이고 엄마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걸 모두 잊고 있는게 아닌지 묻고 싶었다.

양정아씨의 사연은 엄마들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케이스도 아니다. 주변 워킹맘들을 살펴보면 밤 12시가 다 돼 퇴근해서 아이의 반찬을 요리하고 아이가 다음 날 7시 반에 등원해서 먹을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야만 잠이 들 수 있다. 머리도 감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멸치를 볶고 있노라면 눈에서는 눈물이 난다. 그나마도 아침 일찍 받아주는 어린이집을 겨우 구한 터라 불만이 있어도 한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십여년 전엔 꿈많고 야무진 여학생이었을 엄마들은 오늘도 부엌에서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뒤이어 나온 남궁정아씨의 사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학병원의 수간호사를 꿈꿀 정도로 야무진 그녀의 꿈을 잘근잘근 짓밟는 시댁과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시청자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어째서 남자가 커리어를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 것은 가정을 위한 것이라 주변에서 도와야할 숭고한 일이며 여자가 하는 것은 욕심이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2부에 등장한 아이 13명에 며느리와 손주까지 다 데리고 사는 집과 종갓집 살림을 혼자 다 하는 며느리는 인간극장에 등장했던 걸로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순간 눈길을 끌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일반적인 가정의 사연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시청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얻기 힘들어질 수 있는 선택이었다. 3부는 그 가족들이 어영부영 1m짜리 밧줄을 메고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고 '기적'이라고 아름답게 처리하고 넘어갔다. 스무명이 넘은 가족 구성원들이 가사 분담을 철저히 정한다든지 대학이 가고 싶은 일곱째 딸의 학업지원방법을 찾는다든지 하는 속시원한 해결책도 없이 다큐는 마무리 됐다. 가난이 지긋지긋한 딸들의 원망섞인 투정에 첫째를 18살에 낳고 마흔이 넘어 찜질방을 처음 가본 엄마의 대성통곡만이 오디오를 가득 메웠다. 여건만 된다면 누구라도 일단 네덜란드로 탈조선하는 것만이 답인듯 느껴졌다.

'한 개인의 문제는 전부 사회 문제다'라는 말이 있다. 엄마들을 전쟁터로부터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더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는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성차별에 대한 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제도적인 문제들로 가득하다. 여성의 학력수준이 더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엄마의 전쟁은 핵전쟁급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육아를 여성의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양육해간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남자도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이 당연하고 쉬프트 근무로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함께 양육하고도 직장 내에서 진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문화 정착이 시급하다. 마크 주커버크도 부성휴가를 쓰고 아이를 키웠지만 그 사이에 페이스북은 망하지 않았다.

박지윤 아나운서가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일과 커리어 모두 욕심내는 자신이 비정상인지 물었을 때 타일러는 이런 고민들은 왜 엄마만 해야하는지에 대해 되물었다. 가사가 좋아서 집에 있을지 아니면 나가서 회사를 다닐지 엄마들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아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외벌이 가정이더라도 아빠가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이 확보되어야한다. 남자는 나가서 일하느라 육아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소외되고 자연스레 퇴직 후에 외로운 노인이 되는 악순환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쯤되면 대한민국에 행복한 사람이 남아있기는 한건지 의구심이 생길 지경이다.

사내아이 둘을 하루종일 끼고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둔 친구가 있다.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알파걸'이었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자조적인 어투로 말하곤 한다. "가끔 공부 왜 했나 싶지 않니? 내가 불고기 잘 볶으려고 공부 열심히 했었나 싶다" 한 때는 누구나 꿈많은 덕선이었을 이 시대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이 시를 인용하고 싶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문정희 -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블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 거야
문화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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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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