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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 사생활] 나도 여자랍니다 - 신생아를 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입력 2016-12-09 09:48:00 수정 2016-12-15 2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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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강남역에 나가본 적이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네온사인과 고층 건물.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너무도 강한 이질감을 느꼈었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나도 위화감 없이 저들 사이에 섞여서 강남역 한복판을 걸어 다녔고 그게 유별나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아이를 데리고 무려 유모차를 끌고 강남역에 갈 일이 있어 2년 만에 그 곳에 가보았을 때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이 밤 누군가를 온전히 보살펴야한다는 부담감 없이 누군가와 술 한 잔 기울이기 위해 홀몸을 부지런히 움직여가는 앳된 얼굴의 젊은이들. 이미 친구들 만나 가게로 향하는 바지런한 발걸음들. 하나 같이 한줌 허리에 가느다랗고 길쭉하게 쭉 뻗은 다리를 가진 그녀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같이 느껴졌다.

신생아를 낳은 후에 대다수의 엄마들이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모성애는 너무도 신화화되어있다. 엄마들은 새 생명을 낳은 성스러운 존재인데 그런 거룩한 생명을 안고 우울감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하지만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인간’ 엄마들은 신이 아니기에 우울하다. 특히 ‘초보’엄마들은 더욱 우울하다.

뿅갹이를 낳고 15개월후쯤, 대학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기를 낳은 지 100일가량 되었다고. 마침 우리 집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너무도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는 후배를 위해 장난감과 옷가지를 몇 개 챙겨들고 찾아갔다. 학창시절부터 쏙 들어가던 보조개와 훤칠한 키에 낭창낭창한 몸매를 자랑하던 그녀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힘없이 웃고 있었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출산과정부터 혈관종으로 인해 자연분만 후에도 재수술을 해야 했던 그녀는 신생아 육아가 너무도 힘들다고 했다.

“왜 아무도 신생아 육아가 이렇게 힘들다는 말을 해주지 않은 거죠?! 나한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후배를 토닥이면서 대답했다. 그건 신생아 엄마들이 너무 힘들어서 말할 힘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려 하소연할 힘도 그럴 뇌의 회전력도 잠을 못자서 모두 멈추어버리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사실 아마 정말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 않을 것이다. TV에서도 애를 돌보다 지친 장면들이 종종 나오기는 하니까. 하지만 처녀 적이나 심지어 임신 중일 때에는 아무리 신생아 키우기가 고달프다고 말해줘도 들리지 않는다. 이건 정말 실전에서 닥쳐봐야 아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장 내 손에 이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이 달려있고 얘는 혼자 먹을 줄도 싼 똥을 닦을 줄도 심지어 얼굴 위에 천이 덮여도 그걸 치울 줄 조차 모른다. 남편은 아이의 부모 중 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하등 쓸모가 없다. 그냥 얼어붙어서 어버버 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냥 가구처럼 서서 눈알만 굴리고 있는게 응당 그가 해야할 몫이다. 그 때부터 엄마들은 잔 다르크보다 더 큰 용기를 내어 잘 모르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해야 한다.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고 게워내는 토를 닦고 그 가재수건을 삶아 빨고. ‘엄마’라는 존재들도 사실은 불과 하루 전까지도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해내던 젊은 여자였을 뿐인데 갑자기 애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 두렵고 못해낼게 없는 위대한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 기간도 없었고 그 것이 이토록 고달픈 것인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머리를 예쁘게 드라이하고 겟잇뷰티에서 혹은 유투브에서 배운 화장술로 얼굴을 꾸미고 아찔한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고 친구들과 쇼핑을 즐기던 처녀적의 모습은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다. 등에 초감도센서를 장착한 아이는 잠시라도 바닥에 내려놓았다가는 울어 제끼기 시작하고 달래는데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유도 모르겠는데 엄마가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는 웃긴 모양새가 되고 만다. 아무리 작은 신생아라도 하루 종일 안고 있다보면 손목이 내 손목이 아니고 등마저 다 굽는 느낌이다. 잠깐 내려놓지도 못하게 하는 터라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아이를 안고 변을 봐야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나는 뿅갹이를 낳은 후부터 화장실을 갈 때 항상 문을 열고 가야한다. 개방형 변보기를 시행중인 것이다. 문을 닫았다가는 엄마가 사라졌다면서 울고불고 문에 기대어서 두드리고 난리가 나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쾌변을 위해 프라이버시를 포기했다. 요즘에는 그나마 커서 아빠와 함께 있을 때면 문을 닫곤 한다.

아이가 돌 정도 될 때까지는 그 날의 첫 세수를 아이를 재운 밤 시간에 하곤 했었다. 세수도 안한 얼굴로 유모차를 밀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슈퍼를 가고 다 했었다. 시간이 조금 허락하면 물티슈로 얼른 눈곱을 떼기도 했다. 아이를 안 낳아본 사람은 아니 대체 5분도 안 걸리는 세수를 왜 할 시간이 없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갈 것이다. 하지만 닥쳐보면 안다. 머리 감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희귀한 기회인지.

안겨서 온 얼굴을 문질러대고 입으로 빨다 젖을 게워내는 아이 때문에 옷은 항상 장신구가 달려있지 않은 수유복만 입어야했다. 예전엔 왜 엄마들은 항상 목 늘어난 티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아이를 낳아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손으로 입으로 워낙에 당겨 대서 새 티셔츠도 금방 늘어나 버리는 거고 아이의 손아귀로부터 내 머리숱을 지키기 위해서는 머리는 뒤로 올려 묶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푸석한 피부에 잠을 못자 퉁퉁 부은 내 얼굴이 그렇게 못나 보였다.

나의 경우에는 출산 후에 늘어나 버린 몸무게도 자신감 하락에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엄마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고 몸무게에는 큰 변화가 없더라도 산후에 미묘하게 못나게 변해버린 체형 때문에 자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며 슬퍼한다. 누군가는 많이 빠져버린 머리숱 때문일 거고 탄력을 잃은 피부와 양 볼을 가득 메운 기미 때문일 수도 있다.

임신 중에도 허벅지가 상당히 두꺼워졌었다. 걸을 때면 허벅지 사이가 부대꼈고 등발은 더욱 좋아져서 전에 입던 옷이 꽉 끼어 잘 맞지 않았다. 어서 이 열 달이 지나가고 나도 출산만 하면 연예인들처럼 금방 붓기가 쫙 빠지고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날씬해야 인간 취급받는 더러운 세상에선 애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TV나 잡지 화보 속 연예인들은 임신해도 힐까지 신고 나와서 손가락도 안 붓고 정말 배만 뽈록 나온 모습을 자랑하고 그것도 모자라 애 낳고 백일도 안 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컴백한다. 젊은 여자들은 애는 내가 낳았냐며 그 모습에 환호한다. 자신도 애낳고 나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거란 혹은 여자는 애낳고도 날씬해야 승리자란 환상은 더더욱 공고해져만 간다. 여기서 쉽게 간과하는 점은 원래 그들은 타고나게 예쁘고 날씬해서 결혼 전부터 연예인이었다는 점, 출발선부터가 다른 거다. 그리고 임신, 출산이 늙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흐트러진 몸 수습 못하고 이어지는 빡센 육아 때문에 늙는 게 결정타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이로부터 예외 아닌가. 현실 속의 애엄마들은 산후 조리는커녕 애 안고 살림까지 하느라 손목과 어깨, 허리가 남아나질 않는다.

원래 통통한 체질을 열심히 자제하고 관리해가며 겨우겨우 적당히 날씬함을 유지하던 나는 먹는 입덧 앞에 무너졌고 애가 30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직도 10키로 가량 더 군살이 붙어있다. 독한 다이어트라면 손에 꼽을 만큼은 해봤다. 머릿속으로 이론은 빵빵하다. 숀리가 대수냐 아놀드홍도 필요 없다. 나도 누구든 이론으로는 45키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살이 쪄가는 내 몸과는 달리 세상의 기준은 더욱 각박해져만 가 요즘 젊은 것들의 기준에서 키가 작은 나는 이미 이번 생엔 틀렸다. 키가 작으면 몸무게라도 40키로는 나가줘야 깜찍한 귀요미로 승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열리는데 키도 작은데 살까지 찌면 요즘말로 ‘노답’이라나. 다들 뼈 속까지 비운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거리를 내 팔로 걸어 다니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자면 그 몸무게가 거짓말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애 키우는 것만으로도 고달파 죽겠는데 망가져버린 내 몸매까지 보고 있으면 한없이 우울해지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찍힌 내 사진을 보면 내 몸만 오려내고 싶을 정도로 못났다. 나도 한 때는 어디를 가도 예쁘단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고작 10키로에 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땅에 쳐박히고 만 것이다. 작년에는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고 자존심이 상해서 식욕억제제를 먹고 독하게 굶었던 적도 있다. 6주 만에 6키로가 빠졌고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키위 2개만 먹고 버텼던 날도 있다. 아이와 놀아줄 때 힘이 없고 어지러워서 집중이 되지 않았고 아이가 안아달라고 하면 벽을 집고 심호흡을 한 뒤, 겨우 안아 올렸다. 어느 순간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고 애 키우기도 힘든데 먹는 거라도 먹고 싶은 거 먹자 싶어서 다시 과자를 집어 들었고 요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살이 빠졌다며 즐거운 마음에 사놓은 옷들이 다시 몸에 안 맞았고 요요를 정면으로 맞은 몸은 유독 뱃살에 체지방이 더 집중된 듯 보였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산후 6개월 내에 출산 전 몸무게를 회복해야한다는데 지금 내 아이는 30개월이 훌쩍 넘었다. 요즘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헬스장으로 출석하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근육통에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매일매일을 보름쯤 견뎌내자 점점 습관이 붙었다. 운동으로 다 소진하고 나면 힘이 없어서 아이와 놀아주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기운을 끌어 모아 함께 키즈까페도 가곤 한다. 물론 밤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도 세수도 못하고 쓰러져서 잘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지만 조금씩 되찾아가는 라인을 보면서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다. 얼마 전에 출산한지 3개월을 조금 넘긴 선배 언니를 만났다. 이제 고개를 겨우 가누는 아이를 신생아용 아기 띠에 메고 온 언니는 뿅갹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화장을 하고 온 나를 보면서 완전 아가씨 같다고 말했다. 언니에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언니, 그건 언니가 아직 애 낳은 지 100일 밖에 안돼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뿅갹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던 그 달의 신새벽, 뿅갹이가 언제 다시 깰지 불안해하며 인터넷 검색창에 ‘육아’로 검색하고 눈에 들어오는 글들을 읽고 있었다.

저는 18개월 완모했는데 힘내세요.

우리아이는 24개월인데 어린이집 보내기 이를까요?

아이가 36개월인데 배변교육이 너무 어려워요.

글을 읽다 허공에 외쳤다.

“우리 애는 이제 26일인데!!!”

대부분의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거울 속의 꾀죄죄한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시 반짝반짝해질 수 있을까 싶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쁜 애엄마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타고나기를 예쁜 사람일 것 같고 나처럼 암흑 같던 시기는 없었을 것만 같다. 마치 애조차도 하나의 패션 소품처럼 느껴진다. ‘이거 봐라. 나는 애도 낳았는데도 이렇게 날씬하고 예쁘다’라며 으스대는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 지나고 분노의 18개월이 지나고 나면 점점 더 아이는 키울 만 해져가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나면 두어 달 정도는 흐트러진 몸과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며 깊은 동면에 빠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시간마저 지나고 나면 더 여유롭게 나를 꾸미고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집안일은 조금 소홀히 할 지라도 ‘나’를 회복하는데 과감히 투자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어버린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광명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고.


심효진 <육아 칼럼리스트>
남편과 아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살림과 꽃꽂이를 좋아하고 기록을 할 때 정신이 가지런해진다고 믿는 5년차 주부. 글쓰는게 제일 꾸준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입력 2016-12-09 09:48:00 수정 2016-12-15 21:46: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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