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처음 가보는 남자의 교회는 클래식한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고풍스러운 교회였다. 지하 본당에 들어서자 캐럴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 애들 준비하는 것 좀 가서 보고 올게.”
정면의 십자가와 크리스마스에 한껏 흥이 오른 사람들의 표정, 회사와 사람에 치여서 세상은 삭막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따듯한 분위기가 오랜만인 것 같이 느껴졌다. 사막 같았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이완되는 듯 했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가 어린아이들을 따뜻한 눈길로 어루만지고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조무래기 손에 들린 리코더, 트라이앵글 따위를 내밀며 남자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랑이 많은 남자구나.'
마음 한구석이 몰캉거렸다. 후에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 남자는 나와 연애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크리스마스에 이 공간에서 아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었겠지.'
그동안 남자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낼 때마다 콧방귀를 꼈었는데 이제는 나도 조금은 진지해져도 될 순간이라고 느꼈다. 그 날 저녁 나는 최고의 채끝안심스테이크를 맛보았고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자가 그 때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아이들도 다 ‘여자’아이들이었다. 임신 후에 성별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렇게 딸이어야 한다고 난리였다. 남편이 하도 ‘딸’, ‘딸’ 노래를 부르니 괜한 반항 심리로 애가 아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던 것은 남편에게도 여태껏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임신 6개월쯤 되었을까.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아들일 가능성이 70%정도 되어 보이네요. 확실한건 낳아봐야 압니다만.”
나는 있는 그대로 전했고 남편의 증상은 그 이후로 시작되었다. 마치 우울증 초기 증세처럼 말끝을 흐리고 멍하니 사물을 응시하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여느 때보다 축 처진 어깨가 애처롭다. 식당에서 여자아이들이 보이면 “하.. 여자애들이 예쁜데..”, 길가에서 여자아이들이 보이면 “하.. 여자애들이 귀여운데..”, 신호대기를 하다가도 “난, 딸이랑 쇼핑하고 영화보고 까페가서 수다도 떨고 그런 게 꿈이었는데..” 라며 도통 말을 끝을 맺지 못한다. 위로가 될까하고 말을 건네 보았다.
“아들이랑도 하면 되지! 그리고 아들이랑 같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그러면서 놀아. 같이 목욕탕가서 등도 밀어주고.”
“몰라, 난 목욕탕 안 좋아해! 등 안 밀어도 돼!”
이미 여기 아들이 하나있는데 또 낳을 필요가 있나 싶은 순간이었다.
유턴을 하다가도 “내가 아들이어도 예뻐할까..?”라고 진지하게 묻곤 했다. 워, 이거 무서워서 아들 낳겠나 싶었다. 다음 검진에서 남편은 의사에게 거의 울먹이다시피 자세히 다시 봐달라고 했지만 의사는 여기가 음경이라고 초음파 상으로 확인시켜주었을 뿐이다.
결국 뿅갹이는 태어났고 남편은 아들가진 아빠가 되고 말았다. 나는 산후조리를 친정에서 했고 남편은 당시 대학원 입학 준비로 인해 신혼집에서 지내며 우리는 두 달 간 떨어져 지내야했다. 그 두 달이 컸던 탓일까. 뿅갹이는 쉽게 아빠에게 안기지 않고 온 몸으로 아빠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안락한 양수 속에 있다가 스스로 호흡해야하는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겁나 죽겠는데 젖가슴도 없는 아빠 따위 뿅갹이에게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자기에게도 젖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울상을 지어보였고 나 역시 그래 여자가 애도 낳는데 인간적으로 수유는 남자들이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맞장구를 쳤다.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은 친정에 찾아왔고 신생아 육아에 지친 우리 가족은 남편에게 뿅갹이를 맡기고 각자 볼 일을 보러 나갔다. 덕분에 나도 코에 바람도 쐴 겸 산책을 즐겼다. 30분 쯤 지났을까 집에 다시 돌아가니 남편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애는 무슨 짓을 해도 계속 울고 당신은 핸드폰도 두고 나가고” 라며 지친 표정을 지은 남편은 바닥에 놓여있던 휴지를 세게 걷어차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난 24시간 잠도 못자고 돌보고 있는데 지 새끼이기도 한 걸 고작 30분 돌보고 휴지를 걷어차고 나가는 꼴이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친정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고단한 날은 계속 되었다. 직수완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애를 두고 잠시도 떨어져있을 수 없었고 애가 보채면 내가 안아주는 것 말고는 누구도 달랠 수 없었다. 게다가 잠에 예민한 아이었기 때문에 밤새 아기 띠를 하고 서서 자야했다. 아이가 좀 잠든 것 같아 소파에 기대앉기라도 했다간 귀신같이 알고 다시 깨서 우는 날의 반복이었다.
안방 침대 끄트머리로 보이는 두 다리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남편은 어젯밤 회식을 마치고 새벽 세시쯤 들어온 것 같다. 우는 뿅갹이를 달래며 어렴풋이 시계를 봤을 때 새벽 네 시였고 그 때 남편은 바닥에서 자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울어제끼는 뿅갹이를 안고 버둥대는데 실눈조차 뜨지 않던 남편은 밤바람이 쌀쌀한지 베란다 창문을 스르르 닫았다. 그 때부터 얄미웠다. 새벽 여섯시 그리고 아침 아홉시에 또 우는 뿅갹이를 안고 혼자 달래다 내 안의 화가 터져 나왔다.
“나도 잠 좀 자자!”
남편에게 뿅갹이를 맡겨놓고 두 시간쯤 잔 것 같다. 뿅갹이의 우는 소리에 거실에 나와 보니 뿅갹이를 안고 사색이 된 남편이 망부석처럼 앉아있다.
‘그래 어제 회식도 했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어. 좀 쉬라고 하자.’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던 남편은 잠시 뒤 침대에 드러누워 본격적으로 자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오후 다섯 시. 뿅갹이 달래랴, 젖먹이랴, 이유식 먹이랴, 빨래 개랴, 설거지 하랴, 애 안고 내 밥 먹으랴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며 방문 사이로 보이는 자고 있는 남편의 두 다리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눈에 안보이면 좀 나을까 싶어 뿅갹이를 데리고 단지 안을 돌고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X나 X같은 일이야. 너희 애는 순한데 뭐가 힘드냐는 미혼 친구의 말이, 휴일이라고 널브러져 있는 남편의 궁둥이가 참을 수 없이 걷어 차주고 싶게 만드는 일이거든.“
누군가 묻는다면 꼭 그렇게 대답해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제 분명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뿅갹이랑 셋이 놀러 나가서 맛있는 것 먹자던 남편의 문자가 생각나서 실소가 나왔다.
‘애는 9시면 자는데 지금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는데 가긴 어디를 가.’ 잠을 대체 몇 시까지 처잘른지 알 수 없었다.
띠링
‘어디야?’
남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단지 안’
‘나가자’
자, 그럼 싸우러 가볼까.
그날 저녁 시작된 다툼은 끝날 줄을 몰랐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아마 애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싸워봤을 진부한 주제다.
“내가 전업주부이긴 하지만 육아와 가사를 동시에 완벽히 하긴 힘들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분담해줘야 한다고. 나 매일매일 잠도 모자라고 체력이 딸려서 하루 종일 멍해. 제정신이 아니야.”
“나도 밖에서 힘들어. 특히 지난주부터 너무 바빴잖아. 내 집에서 내가 매일 눈치 보며 살아야겠어? 그리고 내가 집안일 하나도 안 해? 나도 하잖아. 내가 하는 건 안 보이고 안 하는 것만 보이지 항상.”
“당신이 하는 거 알지. 가끔 우유 똥 치우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집안일이란 게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지 알아?”
어쩌다 연이어 설거지 사흘쯤 하면 “우리 집 설거지 80%는 내가 다 하잖아. 너 진짜 결혼 잘했다” 하며 너스레를 떨던 남편의 모습이 겹치며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바깥일이 피곤한지 왜 모를까. 주말이면 쉬고 싶은 마음, 직장생활도 해본 나였기에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 때도 지금의 나처럼 피곤하진 않았다. 뿅갹이를 낳고 지금까지 온전히 잠을 붙여 길게 자본 적이 단 하루도 없다. 늘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멍한 상태로 하루를 견딘다. 무언가에 정신 차리고 집중할 수가 없다. 남편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바쁜데 나는 이렇게 집 안에서 홀로 침전하며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왜 신은 여자에게 임신과 수유를 하도록 하셨을까..’
이렇게 희생해가며 키워낸 뿅갹이도 열다섯 살만 되도 딴 기지배 좋다고 돈 쓰고 다니겠지 싶어서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세 시간이 지나면 젖은 다시 딱딱해져온다. 반복되는 싸움 속에 너무 화가 났던 날은 핸드폰도 아이도 두고 현관문을 크게 한 번 걷어차고 나와 혼자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액션영화나 히어로물만 좋아하는 남편한테 맞춰주느라 못 봤던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눈물을 줄줄 쏟고 돌아왔다. 그 날 뿅갹이는 남편 품에서 두 시간 반을 대성통곡하다가 지쳐 잠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던 우리에게도 터닝 포인트란 있었다. 뿅갹이를 낳고 1년 정도 나는 매일 감기몸살을 달고 살았다. 한 번 감기에 걸리면 도통 나을 줄을 몰랐다. 잠을 못자고 계속 아이를 돌보려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당연한 결과였다. 그 날은 정말 힘이 들었다. 남편은 그런 내가 측은했는지 자기가 뿅갹이를 데리고 좀 나갔다 올 테니 집에서 좀 쉬라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단 둘이 외출했던 적이 없었던 터였다. 엄청 울어서 핏기 없이 질린 남편과 기진맥진한 뿅갹이가 함께 돌아오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지금 그런 걸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돌아올 때 돌아오더라도 지금은 일단 약을 먹고 좀 자야했다.
남편과 아이를 떨리는 마음으로 보내고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이든지 세 시간쯤 지났을까. 실로 몇 개월 만에 내 의지로 눈이 떠졌다. 그 동안 아이가 울어서 무덤에서 일어나는 듯한 기분으로 매번 몸을 일으켰는데 처음으로 내 의지로 눈을 뜬 그 순간은 감기몸살임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상쾌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머리가 가벼운 기분을 느꼈다. 참, 그러고 보니 아이와 남편의 안부가 궁금했다. 핸드폰을 켜서 확인해보니 아무 연락도 와있지 않았다. 무사한 건가..
남편에게 연락해보니 돈까스와 우동을 먹고 있는 사진 한 장과 스타벅스에서 딸기주스를 먹고 있는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며 뿅갹이는 옆자리 이모들 테이블에 매력발산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해왔다. 졸였던 마음이 풀렸다. 둘이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데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그 날 한 번도 울지 않은 뿅갹이는 무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잠이 든 채로 집에 도착했다. 남편의 어깨가 머리 꼭대기 보다 높이 올라갔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이후에 나는 동네에서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고 토요일 수업이 있는 날이면 뿅갹이를 데리고 한강으로 공원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낯선 공간에서 믿을 건 아빠뿐이라는 걸 뿅갹이도 잘 알고 있는 눈치다. 한강에서 처음 보는 처자들 돗자리에 가서 과자를 얻어먹기도 하고 아빠와 잔디밭에서 뛰어다니기도 하며 둘의 관계는 급격히 좋아졌다. 이제는 나보다 아빠를 더 찾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걸 서운해 하는 엄마들도 있다던데 나는 피곤해 죽겠는데 아빠랑 씻겠다는 아이의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보오, 뿅갹이가 아빠랑 씻겠다네~” 라고 한다. 올라가는 입 꼬리를 단속하느라 조금 난처하긴 하다.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엔 온전히 아빠가 아이들 돌보고 나는 그 시간에 집안일을 하곤 한다. 애를 낳고 보니 애를 돌보는게 아니라면 집안일조차 그렇게 즐겁다. 설거지는 적어도 하고 나면 돌아섰을 때 그 자리에 있긴 하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다.
아이가 더 크고 더 이상 모유도 먹지 않자 둘의 외출은 더 자유로워졌다. 시댁에 둘만 가서 4박5일을 지내고 온 적도 있다. 나 없이 잠이 들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뿅갹이는 나를 별로 찾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그 사이 친구와 짧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처녀 적엔 별 일 아니었겠지만 애 엄마 입장에서 친구와 단 둘이 여행이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이제는 한창 레고에 빠져있는 아이에게 아빠는 아이언맨보다 더 멋진 존재가 되었다. 원하는 걸 말만하면 아빠는 뚝딱뚝딱 조립해주는 영웅이다. “아빠, 아이언맨 같아.”라며 자기도 밥을 많이 먹으면 아빠같이 될 수 있는 거냐고 묻곤 한다. 까치발을 딛고 “나 이제 키가 커졌어.”라며 “이제 아빠처럼 어려운 레고도 맞출 수 있겠다!”라고 좋아한다.
지금의 모습만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아빠와 아들 사이가 좋으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 날의 살 떨리는 도전이 있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태평성대가 올 수 있었을까. 남편은 이제 아들 혹은 딸이라서가 아니라 ‘뿅갹이라서’ 좋다고 말한다. 좋은 아빠는 결코 그냥 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심효진 <육아 칼럼니스트>
남편과 아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살림과 꽃꽂이를 좋아하고 기록을 할 때 정신이 가지런해진다고 믿는 5년차 주부. 글쓰는게 제일 꾸준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