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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 사생활] 모유 수유에 대한 단상(斷想)
입력 2016-11-17 09:50:00 수정 2016-11-17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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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개월간 모유수유를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유수유는 산모에게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전 컬럼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모유수유전문가께서는 내 가슴을 쭈물쭈물 주무르며 한마디 남기셨다.

“조건 좋네.”

연륜이 깊은 그녀의 한마디를 그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사이즈와 모양 모두 이상적이라고 예찬하던 신생아실 직원들의 말이 스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이 왜 없으랴. 뿅갹이는 아직도 젖을 한 번에 깊게 물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애처롭게 방황한다. 젖꼭지만 얕게 물고 빨 때는 이러다가 내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지 싶어 내 자식이고 뭐고 앉혀놓고 어금니 꽉 깨물고 한마디 하고 싶다.

“야, 뜩브르 은므냐, 앙?”



내 젖꼭지랑 뿅갹이 입이 잘 붙어있나 확인하느라 내내 내려다보고 있자면 재작년에 박아 넣은 인공디스크가 뒤로 튀어나와 경추 추간판을 탈출할 것만 같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검색해보아도 온통 젖이 부족해서 걱정이라는 엄마들의 글이 줄을 지을 뿐 나처럼 젖이 너무 많이 돌아 문제인 엄마들의 사연은 있지 않았다. 후에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엄마들은 자기 젖 붙잡고 우느라 그런 글을 쓸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출산에 대한 공포가 컸을 뿐 모유수유는 그냥 물리면 되는 건 줄 알았다. TV 속의 엄마들은 너무나도 온화한 미소로 아름답게 수유하고 있었다. 현실은 달랐다. 수유를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되어 유두가 다 헐어버렸다. 2시간 간격, 24시간 체제로 젖을 먹어야하는 아이의 입은 너무 작았고 그래서 나의 유두는 쉴 새 없이 깐데 또 까이고 있었다. 수유가 끝나면 바로 연고를 바르고 랩을 덮은 뒤 그 위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결국 나의 상태는 실오라기 하나 닿을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됐고 아직 추운 3월이었지만 상체는 탈의한 상태로 아랫도리만 입고 지내야했다. 그런대도 아이에게 젖은 계속 물려야하니 영원한 형벌이 계속되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거라고 생각했다.

모유수유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이 놈의 젖 말려버릴거야!’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조금 길게 자고파도 젖이 차서 깨야하고 가슴은 돌덩이 같이 딱딱하고 화끈거리는데 유두의 상처 때문에 유축기도 못쓰고 손으로 짜내야 한다. 줄줄 흐르는 젖을 가재수건에 닦아가며 쥐어 짜내고 나면 손가락 관절이 마디마디 안 아픈데가 없다.

신께 묻고 싶었다.

‘과연 모유수유가 편해지는 날이 오기는 하는 겁니까? 그리고 이왕 모유수유 가능하게 만든 거 애초에 좀 편하게 세팅해주면 안됩니까? 네?!’

처음에는 유축기 사용법을 잘 몰라 무조건 직수만 했는데 유축기 사용법을 알게 된 이후로 드디어 내 젖꼭지의 생존권을 존중해줄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의 이기란 놀라운 것이다. 아무리 병원에서부터 모유수유 전문가에게 쭈물거림을 당했기로서니 내 젖꼭지는 아직 부끄러움을 타는 보호받아야 할 여린 존재인 것이다. 유축기를 처음 사용했을 때 어느 목장의 젖소가 된 것 같은 비인간적인 모습에 알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젖꼭지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다니 나는 기꺼이 한 마리의 젖소가 되길 택했다.

모유는 분유보다 좋고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산모에게 모유수유를 강요할 수는 없다. 유방의 모양과 조건이 모두 다른 것이라 그 편함과 불편함의 정도, 아픔의 정도도 모두가 다른 것을 누구에게나 무턱대고 모유수유가 좋으니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는 나쁜 엄마라고 비난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모유를 먹이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모유를 먹이느라 온 세상이 불행하게 느껴지는 우울한 엄마보다는 분유를 먹이는 온화한 엄마가 아이에게도 더 좋을 것이다.

유축기의 은총을 깨닫고 난 뒤, 나는 늘 4시간 간격으로 유축기 앞에 앉았다. 사실 짜내지 않으면 뭉치고 아프고 열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짜내고 내면 조금 살 것 같았지만 그건 사실 내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꽉 막혀 저 깊은 곳에서 욱신거리는 느낌은 산통보다 심하다는 젖몸살의 전조였다. 손으로 연신 가슴을 주물러보아도 도무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단단히 뭉쳐진 응어리가 더 얼얼할 뿐이었다. 그동안 젖꼭지가 아파 유축을 애용한 탓이었다.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가슴을 쥐어짜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이것은 우리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재빨리 근처에 가슴 마사지하는 곳을 검색했다.

모유수유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어주는 곳은 여러 업체가 있었다. 수유자세교정에서 유선염 해결까지. 엄마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곳이다. 전화로 현재 사정을 설명하고 예약시간을 잡고 나니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까지고 또 까져 쓰라린 젖꼭지와 젖양이 불어만가는 거대한 가슴을 안고 하루하루 너무 고통스럽게 견뎌왔다.

이제 더 이상 가슴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다니 마음이 더없이 홀가분했다. 모유수유 77일째.. 나로서는 정말 많이 버텨냈다. 매 분이 더없이 더딘 시간들이었다. WHO에서는 두 돌까지 먹이라고 권장한다지만 지금 나에게 두 돌이란 오지 않을 시간이다.

응급실을 찾는 마음으로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찾은 그 곳은 아기 침대와 바운서, 나무 침대와 소파가 놓인 깔끔한 곳이었다. 그 곳에 나를 구원해줄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을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었다. 오랫동안 유축과 잘못된 물리기로 가슴 주변으로 젖이 많이 뭉쳐있다고 했다. 마침내 말로만 듣던 젖분수가 터져 나왔다. 이거 뭐 거의 우리 집 마당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전이 터진 것과 같은 희열이다.

“지금 막혔던 유선에서만 젖을 빼내고 있어요. 느낌이 차갑죠?”

오오, 그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양손에 얼굴에 때때로 튀는 젖을 흰 수건으로 닦아가며 열심히 젖을 빼내던 그녀의 등 언저리께로 분명 날개를 보았다.

“자 이제 막혔던 곳 한번 만져보시겠어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찔러보자 그렇게 단단하게 뭉쳤던 가슴의 멍울이 물컹하고 들어갔다. 계속된 마사지에 머릿속 뉴런 하나하나가 쫙 펴졌다 오그라드는 듯했지만 바로 수유자세 교정에 들어가 눈에 힘을 줘가며 열심히 뿅갹이의 입에 젖꼭지를 들이밀었다. 젖양을 줄이려면 짜지 말고 무조건 직수만 하고 버티라는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과 함께 똑부러지는 관리사님(이라 쓰고 ‘신의 손’이라 읽는다.)의 설명과 응원에 왠지 모를 힘이 났다. 다시 한 번 모유수유를 해보기로 하고 뿅갹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관리실의 문을 나섰다. 어질어질했지만 남아있는 온 힘을 모아 입 꼬리를 끌어올리고 이곳으로 날 데려와준 남편에게 미소 지었다.

“여보, 7만원이라고하길래 나는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70만원이 아깝지 않은 가격이네.”

휴, 젖 튀기는 하루였다.

나의 모유수유는 관리실을 찾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반신반의하면서 과감히 유축을 버리고 직수만 시작한 것이 뿅갹이의 탄생 77일 째였는데 어느새 124일이 되었다. 그동안 몇 번인가 젖양을 줄이기 위한 관리를 받았고 몇 번인가 유선이 막혀 더 관리실을 찾았다. 분유먹이는 비용을 호가할 만큼 관리실에 투자했지만 무사히 직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거대한 대추토마토 같던 두 가슴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눈을 감고 정신없이 젖을 빨아대는 뿅갹이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속눈썹이 예쁘게 자라났다. 모나리자 같던 얼굴도 눈썹이 제법 짙어져 사내아이다워지고 있다.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이 생명이 절대자란 존재의 실증같이 느껴진다. 내가 상상해서 빚었느냐. 절대 아니다. 내 머리로는 이런 아이를 그리지 못했다. 그릴 수 없었다. 눈에 힘을 주어 더 자세히 보니 맑은 햇살에 비친 귓가의 실핏줄들이 어지럽게 제 갈 길을 찾고 있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오로지 내 몸에서 만들어내는 젖만으로 이 아이가 커가고 있다. 통통하게 오른 볼 살과 고등어 한 손 마냥 도톰해진 양 허벅지를 보고 있자니 내가 참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어느덧 제법 원활한 수유 패턴을 찾아간 나는 그 때도 역시 수유 중이었다. 나를 빨아먹고 있는 뿅갹이에게 남편이 말했다.

“뿅갹아, 자몽젖 먹을래?”

남편은 내 입에 방금 깐 자몽을 밀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흐흐, 이거 그런 느낌이다. 인간 휴롬.”

남편이 밀어 넣는 자몽 몇 조각인가를 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13개월에 되었고 어느덧 뿅갹이는 신생아 티는 온데간데없고 이유식을 먹고 젖은 간식으로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문지방 닳도록 관리실을 드나들었고 명품백 하나는 너끈히 사고도 남을 금액을 쾌척했다. 마지막 단유과정도 역시나 수월하지 않았다. 단유를 시작한 다음 날 관리실에 갔을 때 내 가슴에서는 무려 600ML의 젖이 나왔다. 그걸 담고 있느라 정말 피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첫 날이 제일 힘들고 다음 날은 조금 낫고, 그 다음 날은 조금 더 낫고 그런 시간을 두 달 정도 보내고 나니 완전히 단유할 수 있었다. 그 고생을 한 가슴치고는 다행히 많이 처지지 않고 무사했다.

이제 주변에서 모유수유를 시작하다가 난관에 부딪히는 친구들은 물을 데가 나밖에 없다면서 모두 나에게 연락을 한다. 주변에 나만큼 모유수유를 온전히 치러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럼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준전문가적인 답변을 준비한다.

“응, 그 상황에서는 말이야~.”




< 글 심효진 >
31개월 남아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육아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를 에세이로 담고자 합니다.
입력 2016-11-17 09:50:00 수정 2016-11-17 09:50: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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