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을 일주일 넘게 지나도록 진통소식이 없자 결국 날을 잡았다. 전날 새벽까지 닭발을 씹었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진통하다 잠을 좀 자자'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모유수유를 시작하면 못 먹게 될 매운 무언가를 너무 먹고 싶었다. 다음 날, 유도분만의 아침이 밝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병원을 찾아 대기실에 들어갔다. 창문 하나 없는 비좁은 공간에 놓인 침대와 오래된 초록색 가죽쿠션의자가 놓여 있었다. 정신병원 내부가 꼭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빠져나가지 않고는 더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공간같이 느껴졌다. 두꺼운 바늘을 힘껏 팔목에 꽂고 촉진제를 맡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생리통 같은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랫녘이 조여 오는 듯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막달에 들어서 2주 간격으로 무표정한 남자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임산부의 3대 굴욕 중 하나라는 내진을 받으며 의사에게서 아이가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양수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나라면 아마 이 말을 듣고 바로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을 테지만 이때의 나는 순진하게도 자연분만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내가 자연분만을 고집한 이유는 아이를 위한 배려도 있었지만 출산 과정을 온전히 내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던 게 더 컸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아이를 바로 내 가슴에 올려놓는 순간의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또 몇 차례 건강상의 수술을 겪으면서 차가운 수술실과 괴로운 회복과정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매번 수술대에 누울 때마다 이 수술이 내 인생의 마지막 수술이 되길 바랐었다.
다시 유도분만의 시간. 이곳에서 '아파요?'라는 질문은 인사에 가깝다. 지나다니는 간호사들 모두 '안녕하세요' 정도를 말하듯 웃으며 물어봤다. "아팠다 안 아팠다 해요. 으음"이라고 말했다간 대답도 못 듣는다. 몇 시간이 더 지나고 "아, 아파요, 흐흑"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씨익 웃었다.
"아직 한~참 더 아파야 해요. 대답하는 거 보니까 멀었네."
한밤중의 그 곳은 문자 그대로의 아. 비. 규. 환. 이었다. 몇몇은 울부짖었고 내 옆방의 산모는 간호사를 애타게 찾으며 "애 나와요!" 소리를 지르더니 정말 대기실에서 애를 낳아버렸다. 시계를 보니 다시 아침이 밝았을 것 같았고 나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짐승의 소리를 냈다. 수염이 돋아나는 만큼 수명도 깎아져나갈 듯 하얗게 질려가는 남편의 얼굴에 미안함이 들었지만 내 의지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밑을 파고드는 내진이란 것도 이제는 더 이상 굴욕의 영역에 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굴욕이고 뭐고 느낄 틈도 없이 그냥 됐으니까 빨리 4cm가 벌어져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었으면 했다. 아픔의 정도로만 따지면 이미 출산 세 번 한 것만큼 아팠던 거 같은데 야속하게도 매번 내 자궁은 2.5cm가량 열린 상태였다.
"무통주사를 좀 맞겠어요?" 그토록 기다리던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침내 무통주사를 맞고 나는 깨달았다. 세상엔 무통주사를 '못 맞는 산모'와 '맞는 산모' 둘만이 존재할 뿐, 무통주사를 '안' 맞는 산모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31시간의 진통 끝에 의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아니 담담한 표정으로 아기가 골반에 꽉 껴 돌지 않고 있고 자궁은 겨우 4cm 열렸으며, 심박 수가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생각할 시간을 가지겠냐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물었다. "1시간이요"라고 대답했지만 간호사는 이미 휠체어를 문 앞에 대령한 채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나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곱씹을 새도 없이 이내 휠체어에 실려 수술실에 뉘였다.
어금니가 딱딱 부딪혀 왔다. 온몸이 떨렸다. 참을 수 없는 추위였지만 어금니와 얼굴을 제외한 몸통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뿅각이는 태어난 걸까?" 실제로는 두어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채 오롯이 혼자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와 출산의 과정을 함께 해준 따뜻한 나의 사람, 남편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남편은 나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우리 뿅갹이 불알이 진짜 커. 내 주먹만 해."
그렇게, 뿅갹이가 태어났다.
글 심효진
31개월 남아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앞으로 육아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를 에세이로 담고자 합니다.
이 컬럼은 최고의 육아잡지 <매거진 키즈맘> 11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