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행동을 하는데도, 한 아이에게는 이해가 되고, 다른 아이에게는 화가 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조금 더 신경 쓰이고 예뻐하게 되는 손가락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똑같이 내 속에서 낳은 아이인데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할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저 아이는 누굴 닮아서 저러는 걸까?’
남의 집 아이들의 행동은 쉽게 이해가 가는 데, 왜 내 아이의 행동 패턴이 이해가 안가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공평하지 못한 부족한 엄마의 자질로 인한 자책감으로 힘들었던 시절, 나를 버티게 해준 두 가지는 ‘기도 모임’과 ‘사주 명리학(命理學)강의’였다. 너무나 다른 성격의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고 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특이하다고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절실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 하는 내게, 믿음이 좋은 친구는 ‘어머니의 기도’는 절대로 흩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내 아이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보면 답이 보이고 육아가 편안해 질 거라고 말이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은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아직도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버거워했다.
나는 좀 더 내 아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바라보고 싶었다. 무엇인가 근거가 될 이론을 자녀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키우고 싶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서구의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와 사주를 본 결과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다수가 사주를 막연하게 미신이라고 생각하며 부정적으로 보지만 과학에 기반한 MBTI 결과와 유사성이 있다는 건 사주 명리학이 그 만큼 가치가 있다는 얘기 같았다.
그 길로 나는 동네 문화센터 명리학 강좌를 등록했다. ‘명리학(命理學)’은 누구나 타고난 성향과 기운이 다르다는 이론에서 출발한 동양철학이다. 그리고, 나는 문화센터의 선생님의 말씀에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물(水), 불(火), 나무(木), 쇠(金), 흙(土),’의 오행 중 하나의 성질을 타고나는데, 엄마인 나는 커다란 ‘나무(木)’ 이고 내 아이는 투박하고 우직한 ‘금(金)’의 성질을 타고 났다고 했다. 오행의 이론상 ‘금극목(金克木)’이라 하여 ‘금(金)’은 ‘목(木)’을 극(克)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는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그래서 제가 ‘금’의 아이를 키우는 게 이리 힘들었군요. 자꾸 그 아이가 저를 금으로 찍으려 해서 제가 힘든가봐요” 하니 선생님께서는 “단순하게 보자면 그렇지요. 하지만, 커다란 나무(木)가 현실에 쓰이는 목재가 되기 위해선 커다란 금(金)인 도끼나 망치에 의해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근사한 테이블도 되고 쓸모 있는 장롱이나 의자가 되는 거지요. 세상에 아무런 ‘자극’이 없다면 훌륭한 원재료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지원씨가 아이를 키우는 그 과정에서 남들보다 더 힘들겠지만, 다른 성향의 아이를 키우면서 받는 자극들이 나무로 태어난 엄마를 다듬고 성장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기쁘게 받아들이시지요“라고 말해 주셨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나와 다른 성향의 아이를 키우며 힘들 때 마다 이 오행(五行)의 이치를 떠올리며 참아낸다. 자식의 여러 부분에서 부딪히는 부분들을 마주할 때 ‘궁합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 아이를 통해 내가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되새기면서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들이긴 하다.)
이건 단지,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나와 다르고 맞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 힘들게 여겨지는 배우자나 가족, 친구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자극하는 어려운 존재를 대할 때마다 나를 변화시키고 다듬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리하여 내가 더 쓸모 있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세상 누구와의 궁합도 그리 나쁜 궁합을 없을 것 같다.
지금도 혹시 궁합이 맞지 않는 자식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 아이는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이 땅에 내려준 의미 있고 ‘고마운 존재’라고 여기며 지내보면 어떨까?
그러다보면, 머지않아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찰떡궁합’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지원 < 교육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