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수다쟁이면 아이가 말을 빨리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우리 집 두 딸들은 둘 다 말을 일찍 시작했고, 네 살이 되면서 한글을 잘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느 부모나 그렇듯이 내 아이들이 혹시 천재가 아닐까 의심했었다. 하지만, 육아는 내 아이가 지극히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평범한 아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이 한글을 일찍 마스터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엄마인 ‘나’의 천부적 재질인 수다 능력(?)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항상 꾸며주는 말과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예를 들어, “우와~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네. 폭신폭신 솜사탕 같기도 하고, 몽실 몽실 하얀 아기 토끼같이 생겼다. 날씨가 좋으니까 기분이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아. ” 이런 식으로 말이다. 덕분인지 아이들은 동화책 같은 문장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굵은 장맛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큰 우산을 쓰고 함께 유치원에 가던 첫째 아이가 “엄마 어디서 큰 박수 소리가 들려요. 짝짝짝 하는 소리.” 가만히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쉴 새 없이 연속적으로 우산을 두드리는 굵은 물방울 소리가 관중석에서 크게 치는 박수소리처럼 들렸다.
“엄마, 하늘나라에서 누가 박수를 치나 봐요. 내가 엄마 말을 잘 들어서 짝짝짝 박수를 치나?” 그 순간, 아이의 기발한 표현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하는 아이들은 어느새 엄마의 언어 속에서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던 거였다. 아이들은 걸어 다니는 동화책과 같다. 신선하고 재밌는 언어들을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똑같다. 우리가 영어를 익숙하게 하기 위해 많이 들려주듯이, 한국어도 많이 듣고 따라 해야 쉽게 익힐 수 있는 거다.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듣는 우리말의 대부분이 아름답고 예쁜 문장들이라면 그 아이도 멋진 표현을 쓰는 어른으로 커나갈 수 있는 거 아닐까?
한글을 빨리 익히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워낙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배우기 쉽게 만드셔서, 다양한 매스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가니 사실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국어의 힘’을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선 일단 우리말을 제대로 확실하게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아이가 7세가 될 때까지 자기 전에는 창작 그림책을 읽어주는 오디오 CD를 틀어주었고, 밥을 먹거나 놀이를 할 때는 창작 동요제에서 수상한 노랫말이 예쁜 동요들을 항상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어린이집 친구들의 이름으로 유치한 ‘삼행시 짓기’ 놀이도 반복했다. 아이가 ‘말의 맛’과 ‘말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빠의 휘파람 소리를 듣던 아이가 뛰어와 내 귓속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엄마, 엄마! 아빠 입속엔 새 한마리가 사나 봐요. 휘리릭~ 휘리릭~ 새소리가 막 들려요. 지난번에는 외삼촌 입에서도 새 소리가 났었는데, 새가 막 옮겨다니나봐."
새콤한 귤과 레몬차를 먹고 나서는 "엄마, 엄마! 귤이랑 레몬이 나를 자꾸만 자꾸만 윙크하게 만들어요. 이거 봐요~~ 귤이랑 레몬은 장난꾸러기 인가봐. " 하면서 눈을 계속 찡긋 거렸다.
예쁜 말을 만드는 아이들 덕분에 엄마는 매 순간 동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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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짜지?" 하고 한 꼬마가 묻는다.
옆에 있던 엄마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눈물에 염분이 섞여 있으니까' 라고 대답해준다.
그 순간,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 꼬마에게 대답했다.
"꼬마야, 눈물이 짜지 않고 달면 넌 그거 먹으려고 하루 종일 울 거 아냐. 그래서 하느님이 조금만 먹으라고 짜게 만드신 거야."
그렇다. 눈물이 짠 이유 조금만 먹으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사람들 하루 종일 울지 말라고 그렇게 만든 것이다.
-류근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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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저 간호사처럼 지혜롭고, 예쁜 말들로 설명해주는 엄마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건넬만한 예쁘고, 근사한 문장들을 만들어 내느라 머릿속이 바쁘다.
이지원 <교육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