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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어서기 본능에 충실하자! (Stand up!)
참으로 신기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때가 되면 아기들은 걷기 위해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기를 시도한다.
도대체 제대로 앉을 수 있을 때가 오기는 할까 염려될 정도로 하루 종일 등을 바닥에 붙이고 발만 버둥대던 때가 엊그제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
식탁 의자를 잡고 일어선다.
침대를 잡고 일어선다.
엄마 손을 잡고 일어선다.
아빠 손을 잡고 일어선다.
성장발달이 다 되어서, 이젠 '어른'이라 불리는 나에게도 이런 본능이 남아있을까?
일어서려는 본능? 오히려, 그 반대다.
늘 편하게 어딘가에 앉고 싶고, 누워있고 싶다.
그러다, 문득 아이를 키우며 깨닫는다.
‘일어서기 본능’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혼자 힘으로 힘껏 일어서야 한다는 걸.
저 작은 아기들도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려 하는데, 난 왜 ‘정신적 걸음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반성한다.
‘소파’ 대신, ‘책’을 잡고,
‘침대’ 대신, ‘가족’을 잡고,
‘식탁의자’ 대신, ‘친구’를 잡고...
‘부모님 손’ 대신, ‘내 마음’을 다 잡고.
본능에 충실하자! Stand up!!
# 2. 매일 삐치는 하나님, 엄마!
아기들은 끊임없는 관심을 원한다.
엄마들은 끊임없이 자유시간을 원한다.
잠깐 쉬려고 했더니, 보채는 아이. 피곤한 엄마, 또 욱하는 성격 나왔다.
우는 아이를 방에 혼자 놔두고 거실로 나왔다.
한 20분 진~하게 울렸다 보다.
안쓰러워서 다시 방으로 달려가 안아주고 달래줬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러 상황을 반복한다.
남편이 그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우리 어릴 때를 생각해봐. 엄마는 아기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야. 그런데, 매일 하나님이 삐치면 되냐? 게다가, 하나님이 힘들다고 우는 데 내버려두고, 천벌을 그렇게 자주 내리면 어떻게 하냐?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
이왕이면, 나도 아이에게 자애로운 하나님이고 싶은데, 왜 매일 속 좁은 하나님이 되는 걸까?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 나이지만, 나도 전지전능한 엄마이고 싶다.
이젠 안 삐치고, 아기의 소원을 잘 들어주는 훌륭한 조물주 엄마가 되어야겠다.
# 3. ‘빠이 빠이’의 의미를 되새기다.
돌이 지나면서 아이는 확실히 말의 의미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치카치카'하고 말하면 손을 옆으로 흔드는 시늉을 하고 '주세요~'하면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내민다.
'사랑해~' 하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하트를 만들기 위해 낑낑 거린다.
볼수록 아기들의 변화는 신기하다.
그 중에서도 아이가 제일 먼저 터득한 의미이자 신호는 '빠이 빠이(bye bye)'였다.
친정엄마에게 잠깐씩 아이를 맡기고 외출할 때, 처음 아이에게 ‘빠이 빠이’를 가르쳤다.
낯을 가리고 엄마 곁을 떠나는 것을 유달리 싫어하던 첫째 아이는 내가 외출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한참을 울거나 불안 해 했다.
그러던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내가 나갈 때 ‘빠이 빠이’하면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주기 시작했다.
‘빠이 빠이’하고 나갔던 엄마는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다.
‘빠이 빠이’하고 아침에 출근한 아빠도 저녁이면 다시 반갑게 나타난다.
‘빠이 빠이’하고 헤어진 할머니, 할아버지도 금방 다시 얼굴을 볼 수 있다.
자기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른인 나에게 '빠이빠이'는 다른 의미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볼 수도 있고,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손짓이다. 나이가 들수록 '빠이빠이'는 진짜 ‘Bye Bye’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나에게도 ‘안녕’이라는 인사가 어린 아이가 가진 ‘빠이 빠이’의 의미처럼, 만나고 헤어진 소중한 사람들을 가까운 시간 내에 다시 볼 수 있다는 마법 같은 믿음직스런 주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이빠이....빠이빠이...
다시만나....다시만나..
# 4. 행복이 보이는 아기
아이의 기억력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다. 돌이 지나자 주변의 사물들의 이름들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테스트 하는 것이 마냥 재미있었다.
“수연아, 식탁은 어디 있지?”
“수연아, 냉장고는 어디 있어?”
“수연아, 창문은 어디 있어?”
“수연아, 소파는 어디 있어?”
과묵한 아기인지라, 여전히 입으로 말을 많이 내뱉진 않았지만, 손가락 하나로 정확하게 사물을 짚어 내는 것이 엄마는 신기하기만 했다.
사물 이름 확인하기 놀이가 지루해 질 때 쯤, 엉뚱한 엄마, 13개월 된 딸에게 물었다.
“수연아, 그럼... 행복은 어디 있어?”
아이는 처음 듣는 이름에 잠시 당황한 듯 있다가 씨익 웃더니, 거실의 중간쯤 되는 허공을 가르켰다.
내 아이의 눈에는 떠다니는 ‘행복’이 보이는 가 보다. 기특한 것...
아이는 확실히 어른보다 시력이 좋다.
키즈맘 이미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