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gn=
아이가 있는 부모들에게 주말은 늘 커다란 '숙제'로 다가온다.
어딘가 데려가서 눈요기라도 시켜줘야 할 것 같다.
이런 때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동물원'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의 유익한 시간을 위해 기꺼이 나선 부모들.
동물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손을 잡고, 유모차를 끌고 '기린, 코끼리, 호랑이, 사자....'의 동물 우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다니기에 바쁘다.
키 작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 동물을 더 잘 보게 하기 위해 어깨위로 안아서 올렸다 내렸다하는 벅찬 근력 운동(?)도 기꺼이 감내하면서 말이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오늘의 숙제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동물원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
아이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응. 난 동물원에서 뭐가 가장 재미있었냐면....음..."
"그래, 동물원에서?"
"히히. 솜사탕 먹었을 때가 가장 좋았지!! "
"헉. 솜사탕??"
TV에서 아이 교육법 강사가 나와서 예로 들었던 이 내용을 들으며 참 많이 웃었다.
내가 자주 경험하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 첫째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문제에 부딪히곤 했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 육아의 길.
아이와 싸우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내가 혼자 울기도 하고, 다시 안아주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는 무척이나 많이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육아를 훨씬 앞서서 겪어낸 육아의 선배들은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그런 때 인거라고, 그건 그저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남들이 말하는 '미운 네 살, 미운 다섯 살, 미운 여섯 살...'일 뿐이었다.
그냥 커 나가는 일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마음과 행동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는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매일 매일 나는 일상 속에서도 내 아이에게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다 보여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린과 코끼리와 사자와 원숭이를 보여 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여유 있게 걷다가 사먹는 달콤한 솜사탕 하나에서도 아이가 크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내 아이가 긴 하루에서 무언가 얻고 깨닫지 못하면 엄마의 할 일을 다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던 것 같다.
어른들도 의외의 사소한 일들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하곤 한다. 처음에 의도했던 결과물을 얻지 못해도, 우연하지 않는 곳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육아라는 과제를 풀어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솜사탕'을 손에 쥐고 있는 아이처럼, 해맑게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린 동생 때문에 잠이 부족해져서 늘 충혈이 되어 있는 나의 눈을 보던 첫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눈은 왜 빨갛지?“
“아~ 알았다. 빨간 딸기 쥬스를 많이 먹어서 그런 거구나. 아니면, 빨간 꽃을 많이 봐서 그런가?"
그 순간, 두 딸을 보느라 지친 엄마의 눈과 마음은 빨간색 꽃보다 더 고운 물이 든다.
육아는 무언가로 꽉꽉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예쁜 점 하나를 찍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찍어왔던 '점'들이 가까운 미래에 멋진 하나의 선으로 연결될 것이라 믿는다.
"젊은 시절 호기와 직관을 따라 다양한 것에 매료됐고, 나중에 되돌아보니 점처럼 찍었던 경험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돼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이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언젠가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스티븐 잡스,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중>
이지원 < 교육 컬럼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