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나올 거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임신 열 달 내내 입덧이라고는 단 하루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임신 사실을 안 4주차부터 예정일을 지난 41주차까지 주구장창 먹어대기만 했다.
아마 애도 배 안에서 ‘이 엄마가 너무 먹는 거 아냐? 이렇게까지 먹을 필요 있나?’ 싶었을 거다. 게다가 난 운동도 잘 하지 않았다. 임산부 요가, 임산부 수영, 임산부 필라테스 같은 바람직한 문화센터 수강들을 제쳐두고 놀 때 해보겠다며 손글씨 강좌를 등록해서 임
신 내내 방바닥에 주저앉아 그림만 그려댔다.(그래서 그런지 선율이는 그림 그리는 걸 정말로 좋아한다.)
그렇게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고 태어난 선율이는 3.86kg의 우량아로 태어나 주었다.
애 낳는 게 원래 그렇게 힘든 건지, 3.86kg이라 더 힘들었던 건지 난 자연분만으로 출산하고도 제왕절개 산모보다 더 오래 침대에 누워 지냈다. 그래도 그 때까지만 해도 해냈다는 자부심과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자긍심으로 들뜬 시간들이었다.
그 우량아를 집으로 데려와 온전치 못한 몸으로 완모(완전 모유 수유)의 꿈을 꾼 데서부터 우리집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미 조리원에서 분유 보충을 해준 아기를 집에서는 아직 충분치 않은 엄마 젖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했으니 이건 처음부터 진 싸움이었다.
스마트한 엄마가 되어보겠다고 임신 때부터 구독한 ‘삐뽀삐뽀119’의 육아 상식들, 애를 5000명이나 길러봤다는 ‘베이비 위스퍼러’가 쓴’ 아기 달래는 법은 당장 내 품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애를 달래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되려 책에서 완모를 하기 위해선 절대 젖병을 물리지 말라 해서 밤새 마른 젖만 물리다가 정말 애도 잡고 엄마도 잡을 뻔했다.
결국 친정 엄마의 ‘천치’, ‘모자란 년’, ‘미련한 기집애’ 등등 산모가 듣기엔 아직 이른 욕을 듣고 나서야 게임은 일단락됐다. 친정 엄마는 ‘넌 잠이나 자라’며 방에 불을 꺼주더니 분유 100ml를 떡하니 타서 애한테 척 물려버렸다.
선율이는 가뭄에 홍수가 터진 듯 범람하는 분유를 벌컥벌컥 받아들인 후 웬만한 아저씨도 잘 하지 않는 깊은 트림을 꺼억 하더니 내리 다섯 시간을 숙면했다.
난 기쁨의 눈물인지 참회의 눈물인지 알 수 없지만, 울다가 그 옆에서 애 낳고 근 한 달 만에 세 시간 이상 잠을 자보는 꿀 같은 천국을 맛보았다.
그렇게 엄마젖을 애피타이저로 삼고, 분유로 배를 채우고, 보리차로 입가심을 하던 선율이는 생후 백일만에 10kg을 찍고 전국 상위1%라는 영광을 얻어냈다.
강호동이라며, 천하장사라며, 대장이라며, 장군이라며 가족들은 기뻐하며 축하해줬지만 목도 못 가누는 10kg짜리 생명체를 매일 안고, 들고 다녀야 했던 엄마는 뼈가 아물기는커녕 되려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누가 자기 자식은 가볍다고 했던가... 무겁긴 똑같이 무거운데 내 자식이라 못 내려놓는 거다.
그러나 어느새 38개월에 접어든 선율이는 백일 이후로 6kg밖에 늘지 않아 현재 16kg의 밥을 잘 안 먹는 미운 네 살로 살고 있다. 밥 먹기 싫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우리 애는 너무 먹어 걱정이에요, 호호호” 하며 오만하게 웃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죗값인 것 같아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안고 지나가면 백이면 백 다 쳐다보던, 용기 많은 어르신은 가다가 다시 와서 다리통을 한참 만져보고 가던 ‘아주 특별했던’ 그 시절이 가물가물한 요즘이다.
글 : 김경아
동아방송대학 방송극작과 졸업
KBS 21기 공채 개그맨
개그맨 동기 권재관과 3년여간의 열애 끝에 2010년 5월 결혼에 골인
2011년 4월 든든한 아들 선율 군 출산.
위 기사는 [매거진 키즈맘] 7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