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 풀 세트, 꼭 사야하나요?
"아이가 이제 만 7개월이 돼 가는데요. 전집 꼭 사야 할까요? 요즘 많이들 사니까 안사면 안 될 것 같고…. 가격 들어보니 50만원이 넘는 것도 있더라고요. 너무 비싸서 '헉' 소리 났어요. 그렇다고 외면하자니 왠지 저만 안사는 것 같아서 아이한테 미안해지더라고요. 앞으로 아이한테 들어갈 돈도 많은데 고민이에요."
여기저기서 전집을 사니까 괜히 조급해지고 따라 사는 건 아닐까. 비싼 돈 주고 전집을 샀는데 아이가 보지 않으면 또 중고시장에 파는 행태가 반복된다. 결국 엄마들은 '전집 꼭 사야하나'라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출판사 맥스교육&상수리나무 이성주 편집장은 엄마들에게 "전집과 단행본을 대립각으로 보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 편집장은 "'단행본이 좋다, 전집이 좋다'가 아니라 '엄마가 책을 많이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며 "책을 많이 보는 분들은 전집보다 단행본이 좋을 수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고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은 명작 동화 주인공을 열댓 개 나열한다면 저 같은 경우 30개 정도 말할 거 아니에요. 제가 엄마라면 책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꼬마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트를 고를 수 있죠. 반대로 전혀 책을 모르는 엄마라면 뭘 읽어줘야 될지 모르죠. 그럴 때 전집이 필요한 거예요."
즉, 전집은 책을 많이 읽는 엄마보다 책을 처음 시작하는 쪽이 맞다. 단행본과 비교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이의 기준에 맞춰서 사야 하는 것. 전집은 '책을 선별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질 때 혹은 바빠서 구체적으로 책을 고를 수없는 엄마들을 위한 맞춤형 도서 세트'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사야하는 전집과 빌려서 봐야 할 전집은 어떻게 구별할까.
이성주 편집장은 "0~5세 영유아 아이들은 면역성이 없는 편이다. 아이들은 내 책이 집에 있으면 자기면역성이 생긴다. 5세 이상 아이들은 대여를 권장하지만 이보다 어린 아이들은 사서 보는 것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명작이나 전래동화 같은 경우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으면 좋다"며 "대신 수학, 과학, 철학 동화 및 생활 접목 동화는 대여해서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명작이나 전래동화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입문서다. 고전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명작이나 전래동화는 집에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여러 번 읽어주는 것이 좋다.
'어린왕자' '선녀와 나무꾼' 등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명작, 전래동화와 요즘 아이들이 읽는 명작, 전래 동화를 비교해보면 내용이 거의 같다. 반면 유아 때 보는 과학, 수학 책 등은 전반적인 것이 아니라 일부분이다. 이는 자라면서 계속 확장해줘야 한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차이나는 이유다.
비싼 전집 가격 때문에 '할인'에 혹하는 엄마들이 많다. 전집을 정가박스에 구입하려면 99만원인데 50% 할인에 사은품까지 받으면 "저렴하게 샀다"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구매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저렴하게 사도 결국 아이들이 읽지 않으면 중고시장에 내다 파는건 똑같다.
이 편집장은 “옆집 아이가 보는 전집이 좋아보인다고 우리 아이에게도 권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책을 많이 보여주는 건 좋지만 엄마들은 본인이 전집을 샀으니까 아이에게 꼭 읽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항상 유념해야 할 점은 '전집은 교과서가 아니다'라는 점.
그는 마지막으로 조언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분명 다릅니다. 우리 아기가 관심 있는 책을 보여주세요. 인터넷에 나오는 책들이 좋은 점도 있지만 한계점도 있는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꼭 전부 재미있는 아니잖아요."
꼭 읽어야 하는 전집 목록, 정말 있는 걸까요?
전집 구입을 결심한 엄마들은 추천 리스트를 확보하느라 바쁘다. 옆집 책장에 꽂혀 있던 전집 제목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어느 출판사에서 대박을 쳤다는 베스트셀러를 수소문하기도 한다. 고가의 물품인지라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추천 목록의 후기를 검색해보면 더 혼란스럽다. 누구는 너무 좋아서 절대 후회없다는데 누구는 아이가 한 번 뒤적인 이후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의문이 생긴다. 꼭 읽혀야 하는 전집 목록, 정말 있는 걸까.
아이들은 '전집'과 '단행본'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
개인마다 성향과 흥미가 천차만별이다.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을, 그것도 수십권을 갖다 주면 아이는 질색을 하며 책에 대한 거부감마저 느낄지 모른다.
부모는 전집 구매를 결정할 때 아이가 관심을 보였던 단행본의 구성과 작가, 내용 등을 떠올려야 한다. 아이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제대로 알아내 그것을 읽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이 빨리 트인 아이에게는 어휘량이 조금 많은 책을, 감성이 발달한 아이의 경우 창작동화를 읽히는 것이 추천된다.
이 단계를 정확하게 거치면 입소문을 타고 떠도는 전집 목록이 왜 무의미한지 알게 된다.
아이가 곤충에 관심을 보인다는 이유로 자연관찰 전집을 사려고 한다면 그 전에 나비나 잠자리를 다룬 단행본을 사서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자. 단행본 3~4권을 더 사서 읽혀 본 후에 전집을 구입해도 늦지 않다. 사실 아이는 전집과 단행본의 차이에 대해 모를 뿐더러 별 관심이 없다.
단, 연령대별로 나타나는 인지발달의 성향은 전집 구매 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 연령대별 체크 포인트 >
0~2세
신생아들은 윤곽이 뚜렷하고 굵은 선의 흑백 그림책에 관심을 가진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는 크기가 크고 빨강, 초록, 파랑 삼원색으로 그려진 그림책이 좋다.
책의 재질과 형태는 다양할수록 좋다. 다수의 화가가 참여한 전집은 다양한 화풍을 습득할 수 있어 추천된다.
말문이 트이는 시기에는 재미난 의성어·의태어가 많이 등장하는 그림책이나 동물이 주인공인 책에 흥미를 보일 것이다. 운율이 살아있고 짧은 문장이 반복되는 그림책은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된다.
3~4세
세 살에서 네 살로 접어드는 시기가 되면 한 권의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관심 분야가 넓어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책을 찾는다. 전집 읽히기 딱 좋은 시기다.
자연관찰, 생활동화 등이 이 시기의 추천 전집이다.
과학전집은 사진의 앵글이 다양한지, 그림이 정확한 실제 모습을 묘사했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
배변 가리는 방법이나 이 닦는 법 등을 즐겁게 배우는 생활 동화도 3~4세 때 읽히면 좋다.
5~7세
철학을 이야깃거리로 담은 철학동화나 수학동화, 세계 명작 등을 읽히기 좋다. 책읽는 행위를 놀이보다는 학습에 가깝게 인식할 수 있는 시기기 때문이다.
수학, 과학전집을 고를 때는 개념과 스토리의 연계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위 기사는 [매거진 키즈맘] 창간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