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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부 김진아(가명)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가방에서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겉봉투에는 커다란 분홍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여자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들과 같은 반이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여자 아이였다. 아들과 함께 열어 본 편지에는 ‘나는 네가 좋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너 좋아하나봐’라고 웃음 섞인 말을 슬쩍 건넸다. 그러자 아들은 ‘응, 내 여자 친구야’ 라며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엄마 김진아씨는 당황했다. 요즘 아이들이 이성에 눈 뜨는 시점이 빠르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입에서 여자 친구라는 말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고작 7살 유치원생이 말이다.
같은 성의 친구가 더 좋은 나이
아이의 이성 친구를 말하기 전 이 나이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발달부터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만 4세까지 자신의 성을 인식하는 ‘성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 후부터 이성 친구와 동성 친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6~8세까지는 이성보단 동성 친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다. 그래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몇 개의 소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8세부터는 같은 성끼리 어울리려고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 마디로 7세는 이성보단 같은 성을 가진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나이인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는 "아이들은 자신의 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같은 성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성을 관찰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태도나 행동, 가치 등 성별의 일반적인 정보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부모와 아이가 말하는 이성 친구란
성인들에게 이성 친구란 단순히 성이 다른 친구가 아니라 연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말속에는 애정의 대상이라는 숨은 뜻이 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등을 표출하는 것은 사춘기 시절부터다. 그 전까지 아이들에게 이성 친구란 말 그대로 성별이 다른 친구다. 아이가 아무리 이성 친구와 친하더라도 ‘친구’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일지라도 이성 친구에 대해 다른 정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처럼 이성 친구와 사귄다는 시선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남녀가 교제를 시작하는 것은 사춘기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발달하면 이성과 친해
이성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7살 아이들을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유형은 긍정적으로, 다른 유형들은 부정적인 바라본다.
긍정적인 유형부터 살펴보자면 성향과 놀이, 취향 등이 비슷한 이성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유형이다. 앞서 말했듯 6~8세는 동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조건 같은 성의 아이와 친하고 이성을 배척한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반에 20명 중 10명이 같은 성, 10명이 다른 성이라고 가정해본다면 10명의 동성 아이들 모두 친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성향이나 취향 등으로 인해 친밀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반대로 이성이라고 모두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을 수 있고, 서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거나 노는 게 재밌고 즐거운 아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성’보다는 친구 개념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사회성이 적절하게 잘 발달 된 아이유형이다. 본래 타고나길 남자는 남성성, 여자는 여성성이 더 많다. 과거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의 양성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남자 아이는 여성성, 여자 아이는 남성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양성 균형을 이룬 아이일수록 사회성이 좋다. 남녀 성을 구분하지 않고 두루두루 잘 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성이 빨리 발달 된 아이일수록 동성과 이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아이들과 잘 지낸다.
아이 내면적인 문제에 따른 결과
반면 이성 친구라는 현상 뒤에 부정적인 모습을 숨기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동성 친구들과 노는 것을 싫어하고 이성 친구와만 놀려고 하는 경우다. 얼핏 앞서 말한 양성 평등을 이룬 아이들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사회성이 발달한 아이들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 지내지만 이 아이들은 동성은 배척하고 이성 친구하고만 어울린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동성에 대한 호기심을 통해 자신의 성을 알아가려는 태도를 갖는다. 하지만 이렇게 동성을 배척해버린다면 자신의 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만 4세까지 끝냈어야 할 성정체성 확립을 하지 못해 생긴 문제라면 그로 인해 아이의 성장 발달이 지연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이성 친구를 향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다. 부모에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여자아이는 아빠를 좋아하고 엄마를 싫어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남자아이는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를 싫어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며 자란다. 이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거쳐야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기서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애정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부족한 애정을 이성친구한테서 찾으려는 것이다. 만약 이때 문제 행동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당장 사춘기만 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또래보다 일찍 성적 접촉을 시작하게 되거나 바르지 못한 이성관을 갖는 등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모는 7살 아이의 이성 친구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회성 발달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인지, 아이가 갖고 있는 문제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인지 말이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아이의 이성 친구가 갖고 있는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강은진 객원 기자
도움말/ 원광아동상담센터 잠실본원 유재령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