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 다니엘 페낙은 독서 교육에 관한 에세이 『소설처럼』에서 ‘읽다’라는 단어는 ‘사랑하다’가 그렇듯 명령법이 먹혀들지 않는 동사라고 했다. 글자를 보고 뜻을 생각하고 감상을 정리하는 행위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므로, 아무리 강력하게 명령한다 해도 억지로라도 따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아이에게 “책 좀 읽어라!” 하고 큰 소리를 내 본 엄마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일, 책을 읽게 하는 일을 싸우지 않고 해낼 방법은 없을까?
책 읽기 좋은 시간을 찾자
아이에게 “책 좀 읽어라!” 하고 외친 순간을 돌아보자. 당연히 아이가 책을 안 읽고 TV나 레고 등 딴 일에 몰두해 있을 때일 것이다. 그런데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참 재밌을 때 자꾸 “책 읽어라!” 하는 말을 듣는다면? 당연히 독서에 반감을 갖게 된다.
책을 읽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 편이 좋다. 그 밖의 시간에도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더욱, 처음에는 이런 방법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이라도 좋다.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우리 아이는 벌써 정해진 시간에 책을 읽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잘 때는 꼭 책을 읽어줬거든요.”라며 뿌듯해하는 엄마들을 만난다. 자기 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은 부모 세대 대부분이 누려 보지 못한 행복이다. 정서 안정을 위해서는 아이가 그만 두라고 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해주는 것이 좋다. 다만 아이가 ‘책은 자기 전에 읽는 것’으로 오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 역시 잠자리 책 읽기는 ‘독서 시간’과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
책 읽기에는 역시 아침 시간이 좋다. 생체리듬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두뇌 효율이 가장 높은 오전 시간에는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조차 미루라고 권한다. 가장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방학 때라도 아침 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 정해 보자. 하루 20분이어도 좋다. 지키지 못했을 때는 다른 시간이라도 정해야 할 텐데, 외출 전후나 친구가 놀러오기 전후처럼 들떠 있는 시간은 피해야 한다.
왕도는 없다, 부모도 읽어라
정해진 독서 시간에는 반드시 부모도 함께 책을 읽도록 한다. 잡지나 신문도 좋고, 심지어 요리책이어도 된다. 부모 자신의 관심 분야 책이면 제일 좋고, 아이 책이어도 된다.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이는 것 외에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기’의 지름길은 없다. 부모 스스로 지금껏 책읽기를 소홀히 해왔다면 지금부터 시작하자. 다행히 요즘은 좋은 어린이 책이 아주 많이 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좋아할 수 있는 책, 그림책을 읽는 것으로 독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내가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야 아이에게도 전할 수 있다. ‘추천도서목록’을 들여다볼 시간에 아이 책을 먼저 읽자. 책을 읽다 울고 웃고 감탄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 아이도 컴퓨터를 끄고 그 책을 들여다보게 되어 있다.
읽어주기 Vs 읽기 독립
학부모 사이에서 많이 쓰는 말이라지만, 나는 아직도 ‘읽기 독립’이라는 말이 낯설다. 더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읽기 독립’이 아이가 혼자 책을 읽게 하는 것임을 안 뒤에는 그것을 위해 많은 엄마들이 전전긍긍한다는 것에 또 놀랐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은 언젠가 ‘하게 될 일’이지 특정 시기에 ‘시켜야 할 일’이 아니다.
부모나 교사와 함께 책 읽기를 즐기던 아이가 혼자서라도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진정한 읽기 독립이 일어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무도 그 순간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 스스로도 이 중대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읽으면 더 많은 책을 읽을 것 같지만, 혼자 읽기를 억지로 또는 등 떠밀려서 시작한 경우 책 읽기의 재미는 급격히 떨어진다. 글자를 아는 것과 뜻을 아는 것이 다른 문제이고 설령 책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도 엄마한테 자꾸 책을 읽어달라고 해요. 언제까지 읽어줘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가 읽어달라고 하면 고등학생이라도 읽어 주세요.” 아이는 듣기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읽기 독립을 했든 안 했든, 아이가 읽어달라고 하면 언제든 읽어 주자. 나아가 먼저 “책 읽어 줄까?”라고 물어보자. 공이 들겠지만, 효과는 기대해도 좋다.
충분한 리액션 이외의 보상은 금지
“책 한 권 다 읽으면 게임하게 해줄게.” “나가서 놀려면 이 책 먼저 다 읽어.”라는 말은 하지 말자. 나는 심지어 읽은 권 수에 따라 스티커를 주는 것에도 반대한다. 책 읽기에 보상이 따르면 아이 심리에 잘못된 순위가 생긴다. 독서보다 게임이, 동화보다 학습만화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순간에는 간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〇〇이가 책 읽는 것 보니까 기분 좋다.” “이 책 글이 많아서 다 못 읽을 줄 알았는데 대단하네!” “아빠도 이 책 진짜 좋아하는데!” 하는 리액션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독서는 기쁜 것, 내가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책은 책대로, 놀기는 놀기대로 좋아야 한다. 굳이 경쟁한다면 책은 언제나 ‘놀기’에 진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사실, 어른도 그렇지 않은가.
글 / 김소영 선생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뒤 시공주니어, 창비에서 그림책과 동화책을 만들었다. 어린이책 전문 편집자로 일하며 <김소영 독서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연감 동화분과 기획편집위원.
기획 / 강은진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