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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14)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입력 2014-07-09 16:40:22 수정 2014-07-09 16: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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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봉사활동에서 옥수수밭 풀뽑기 작업을 배정받았을 때였다.

날씨는 찌는 듯한 더위에 지열까지 겹쳐 섭씨 35도를 오르내릴 정도였다. 자원봉사만 아니었다면 냉큼 계곡에 뛰어들어갈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작업량은 워낙 겁먹어 그런지 얼핏 100미터쯤 되는 듯 했다. ‘저걸 언제 다 끝내지...’차마 엄두가 안 났고, 자원한 게 아니라면 일당을 두둑하게 준다 해도 도망치기 십상이었다. 도리 없이 풀을 뽑기 시작했다. 몇 발짝 앞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온몸에 땀이 비오듯 줄줄 흘러내리고 흙먼지마저 펄펄 날려 얼굴을 도배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고역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개척하듯, 전진하니 다소나마 깨끗해진 이랑도 눈에 드러났다. 도중 땀도 훔칠 겸 스트레칭하다 뒤를 돌아다보니 청소한 듯 깨끗하게 정리된 이랑이 제법 나타나는데 스스로 놀랐다. 한 더위에 그래도 작업을 이만큼이나마 해내다니...연약하기만 했던 내가 대견했다. 아이의 공부도 폭염의 땡볕에서 흙먼지 범벅으로 풀을 뽑는 일보다 더 힘들까.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도 90점 이상은 맞아야지” 라든가 명문대 진학하려면 최소한 3% 이내에 들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면 겁나 도저히 못한다. 30점대 바닥인 녀석에게 갑자기 90점대의 목표는 등산의 등자도 모르는 녀석에게 대뜸 히말라야 8,000미터 고봉을 오르라는 이야기나 같다. 슬며시 “공부 안 한다고 굶어죽나~”라는 반발과 오기만 잔뜩 생겨난다.

밭매기도 ‘얼른 해치워야지’ 하고 아예 100미터를 목표로 잡았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2미터만 나가고 쉬어야지’ 하며 작은 목표,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워 조금씩 견디다보면 어느새 놀랄만큼 성과가 이뤄져 있다. 공부 역시 “그래, 이제는 5 페이지만 돌파해보자” 라든가 “더도 말고 10점만 더 올려보자”고 덤벼들면 대충 이뤄낸다.

요새 학생들처럼 나도 수학이 꽤나 싫었다. 설상가상으로 계곡의 물 흐르듯 시원하게 풀어주는 선생을 못 만나 이른바 왕짜증이었다. ‘어찌하나’ 하고 고민 고민하다가 독학으로 정복하자고 거의 1,000쪽에 이르는 해석정설이란 책을 사들고 덤볐다. 처음엔 한 낮 무더위 속에서 옥수수밭의 풀뽑기처럼 겁이 덜컥 났다. 참으로 바위만한 쇳덩어리를 깎아 가느다란 바늘을 만들자고 덤비는 격이었다. 고민 끝에 나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이 책을 떼기만 뗀다면 그 성취감으로 명문대는 물론, 하버드도 능히 합격할 것이오, 중도 포기한다면 시골로 돌아가 부모님 농사일이나 돕는 시골살이로 전락하고 만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며칠이 걸리든, 몇 시간이 걸리든 10쪽만 목표로 삼았다. 의외로 앞은 쉬워 금방 독파했고, 다음엔 욕심을 보태 20쪽으로 잡았더니 무난하게 나갔다. 이튿날은 30쪽을 목표로 정하고 대들었더니 저녁 무렵 달성할 수 있었다. 드디어 50쪽까지 나간 것이었다. 부피가 얼마나 큰지 들기조차 겁나는 수학책을 50쪽이나 완전히 이해하도록 일일이 풀어가며 읽은 사실이 놀라웠다. 이젠 끝까지 독파할 듯 했다.

밭매기도 그렇다. 겁이 더럭 날 정도로 엄청난 작업량이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말끔하게 뽑아 낸 이랑하며 뽑힌 잡초가 상당히 쌓여있음을 볼 때 ‘나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가득찼다. 그러다 브레이크타임인지 커피와 다과를 들고 나니 새로 시작하는 것마냥 에너지도 마구 솟는 것이었다. 성취감으로 분비된 도파민과 새로운 에너지가 시너지효과를 가져와 작업에 가속도마저 붙었다. 그런 연후 앞을 내다보니 “아뿔싸, 까마득했던 끄트머리가 이윽고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라는 안도감으로 피로도 눈녹듯 사라지고 금방 끝냈다.

예의 수학은 1주일이나 걸려 200쪽을 돌파하였다. 그제서야 “나도 대단한 놈이라구나”라고 처음으로 나 자신을 인정하며 대견하다는 자기칭찬이 마구 일어났다. 남은 게 800쪽이고 해낸 것은 1/5에 불과하지만 수학 공포증에 사로잡혔던 내가 무려 200쪽이나 독파했다는 게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마치 두세 번 겨우 하던 팔굽혀펴기에서 갑자기 30회를 끄덕 없이 해냈을 때와 비슷했다. 자존심의 충족은 이런 것인가 싶고 내가 대단한 녀석이라는 자존감과 자부심이 상승작용하는 것이었다. 만날 2-30점대를 맞기만 하던 녀석이 어느 날 50점을 맞았다 생각해보라! 남들은 비웃겠지만 본인은 모처럼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공부를 해 거둔 성과이기에 그 성취감은 엄청나다. 어떤 과목도 돌파할 듯 자신감이 넘쳐난다.

공부를 잘 하고 싶으면 목표를 잘게 쪼개라.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이 있듯 처음부터 욕심내지마라! 5쪽, 10쪽 이어 50쪽을 독파하면 앞으로 200쪽도 해내리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공부라면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가 50쪽을 읽었다니, 시험지만 보면 게임생각만 떠올랐던 내가 놀랍게도 공부했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 일약 20점을 더 맞았다. 이처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꽉 찬다면 다음은 순풍에 돛단 배격이다. 무릇 나만의 작은 목표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가자!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
입력 2014-07-09 16:40:22 수정 2014-07-09 16:40:22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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