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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12)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입력 2014-06-10 15:40:34 수정 2014-06-10 15: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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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사람을 빗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개를 앞세우면 ‘개만도 못한 사람’이요, 개와 나란히 걸어간다면 '개같은 사람‘이고 개를 끌고 가는 사람이라면 ’개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비유가 꽤 흥미있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개자만 붙으면 개판,개떡, 개xx, 개망나니 등으로 격이 바닥으로 떨어지니 동물로 바꾸어보자. 대저 유목민들은 양떼나 소떼를 보다 양호한 초지 또는 물이 넘치는 개울가로 인도한다. 그때 어느 유목민이건 반드시 양떼를 앞세우며 뒷몰이를 한다. 결코 사람이 앞서 안 가겠다는 동물을 끌고 가는 법이란 거의 없다. 도살장으로 끌고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동물이 이럴진대 사람은 어떨까. “날 따라오라”며 앞에서 끌고 가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의 학습 역시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헬리콥터맘이라 불리우는 학부모는 앞에서 아이를 끌고 간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앞장선다. 바로 앞끌이 학습이다. 공부에 관한 한 엄마가 정보도 밝고 모든 걸 훤히 꿰뚫고 있으니 군말 말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명문대는 순풍에 돛단다’고 설득한다. 정말 그럴까. 문제가 없을까.

반면 “넌 능히 혼자 잘 할 수 있잖아!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라고 말하면서 아이가 알아서 잘 가도록 뒤에서 지켜봐주는 스타일이라면 뒷몰이학습이다. 좀 못믿어워 아이 스스로 결정, 진도를 나가게 하고 꼭 홀로 공부하는 것처럼 유도하면서 학습코치가 돌보듯 옆에서 지켜봐주며 오로지 스스로 깨우치게 돕기만 한다면 아이 스스로 몰아가는 학습이니 자기몰이학습이다. 흔한 자기주도학습이란 수입용어가 아닐까 싶게 적절하지 않다. 오직 자기몰이학습이다

IQ 200을 자랑하며 6세 된 아이가 구구단을 배운지 7개월 만에 그 어렵다는 미적분을 푼다고 대서특필됐던 김웅용 군은 어떤가? 최소한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던 김군은 지방대를 나와 평범한 시민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공부해라”라고 한다. 전형적인 앞끌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자기몰이는 못 되어도 뒷몰이학습으로 속도 조절을 하고 또래들과도 실컷 놀아가며 칼비테 방식으로 인문학, 천문, 지리 등을 광범위하게 차근차근 공부했더라면 지금쯤 노벨상 수상은 물론 빌게이츠를 능가할 만큼 국위를 선양하는 인물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자기 의식을 갖는 듯하다. 젖내가 물씬나는 어린 것이라도 제나름대로의 생각과 의견이 있다. 하물며 청소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까지 만나 본 아이들은 누구나 공부를 잘 하면 칭찬받고 미래도 밝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딴에는 자신의 장래도 꽤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야! 임마! 정신차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란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자존감이다.

자기가 왜 이 세상에 필요한 지, 자기도 무언가 존중받은 만한 가치가 있고 쓸모있는 인간임을 인식해야 비로소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자존감이 있는 아이는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모르는데 무조건 “공부해라” 때론 “ 이걸 해라, 저걸 해라” 고 다그치는 앞끌이는 딱 질색인 것이다. “저것들 꼴보기 싫어 공부 않는다” 에서 저것들이 바로 부모임을 정작 부모는 모른다.

그런 연후 꿈을 좇아 목표를 세우고 한 발작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를 아이로부터 들어야 한다.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그림이 아니라 아이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도와야 한다. 흔한 말로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혼자서라도 능히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아이의 학습을 방해하고 있는가를 파악한 후 아이가 납득하는 처방을 건네야 한다. 물론 친구들의 유혹에 빠져, 스마트폰에 끌려 방황하더라도 “어찌하면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공부가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을까?” 하고 아이 스스로 해법을 찾아 강력하게 실행하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부모는 단지 아이가 잘 가도록 돕는 역할로 대만족이다. 연출가나 감독이 아니다. 스태프의 하나로 충분하다. 시시콜콜 가라마라 을러댄다고 아이가 앞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되는 것이라면 서울대 정원은 백만 명이라도 부족할 것이다.

등산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명품 몇 십만 원짜리 등산복과 등산 장구 일체를 장만해준다고 아이가 산에 잘 오를까. 아이에게 급한 건 무엇인가. “내가 왜 산에 올라야 하지”이다. 그런 후 “어느 코스로 가야 좋을까”이다.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
입력 2014-06-10 15:40:34 수정 2014-06-10 15:40:34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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