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애락 등 감정을 잘 알지 않느냐? 그걸 잘 다독거리고 녹여주는 코칭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아이들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길은 바로 '며느리가 시할머니 대하듯' 코칭하는 거다"라고 말했더니 재미있는지 한참을 깔깔대 함께 웃은 적이 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한다. 슬프면 눈물도 흘리고, 언짢으면 짜증도 내고, 기분 나쁘면 화도 내며 남이 잘 되는 걸 보면 시기심도 일어난다. 이 모든 게 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세 살배기 유아도 지니고 있다. 사람이라고 생겼으면 다 감정이 있고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다. 다만 로봇은 아무리 정교해도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 인간과 다른 점이다.
지난 23일자 동아일보 1면에 ‘타워팰리스 일진’이란 제하에 ‘역삼 패밀리’라 불리우는 강남 부유층 자녀들의 비행을 보도해 놀랐다. 모두가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절도를 일삼는 등의 죄질이 나빠 경찰에선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이들 불량 청소년들의 말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게 없었지만 부모가 공부만 강요하고 때론 때리거나 윽박지르기만 할 뿐,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아 비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짓밟기만 해 뭉치고 뭉친 감정이 견디다 못해 비뚤어진 행동으로 분출한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뚝! 엄마 화났어....”란 식으로 아이를 억압한다. 행여나 “얘, 칠식아! 너 요즘 무슨 고민 있니?” 라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면 권위가 상실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어디가 덧나는 모양이다. “공부 힘들지? 내가 도와줄 일은 없니?” 하고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부드럽게 다독거려 주었더라면 비행은 커녕 공부도 잘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30여년 전 온 가족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놀러가 신난 나머지 비경을 놓칠 새라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기대에 부풀어 귀국하자마자 현상해보니 “아뿔싸!” 단 한 장의 사진도 건지지 못할 만큼 아까운 필름만 망쳤다. 이유는 폭포 주위에 온통 물기가 가득하다보니 카메라에도 물이 스며들어 렌즈가 빛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었다. 말하자면 촬영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다.
아이들 역시 응어리진 감정이 몸속에 남아 있는 한 카메라에 스며든 물기와 같이 공부는 고사하고 ‘역삼 패밀리’처럼 탈선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때 사진은 못 건졌어도 사진기마저 망가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욕심대로 잘 나오게 하려면 물기를 말끔히 닦거나 완전히 차단시키든지 어떤 조치를 했어야 했다. 아이들의 경우도 윽박지를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이를 갈며 켜켜히 쌓여간 감정의 응어리를 정리하지 않는 한 먼지 낀 두뇌처럼 공부는 끝일 수밖에 없다.
윽박지른다는 건 아이의 감정을 짓뭉개는 짓이다. 마치 조폭들이 “야! 무슨 잔말이냐”라는 식이다. 한껏 잘 다스려도 사춘기의 아이들은 세로토닌의 분비가 적어 마냥 튕기기 마련이다. 하물며 강요하거나 때린다면 멀쩡한 신제품을 비틀거나 발로 짓밟는 바나 무엇이 다르랴. 아이들에게 “사춘기란 뭐라 생각하니?” 하고 물으면 “감정 통제가 전혀 안 되는 시기예요” 라든가 어떤 녀석은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라고 어마어마한 표현을 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렇다. 사춘기 때는 아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흐름으로 이리 튀고 저리 튄다. 공부를 잘 하면 부모한테 칭찬받고 본인도 신난다는 사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 스스로 너무나 잘 안다. 문제는 마음은 그렇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있다. 설령 단단히 마음먹더라도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른다. 몇 쪽 나가다 보면 짜증만 앞선다.
예민할 대로 예민한 시기라 그러잖아도 밖에서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화풀이할 데가 없는 처지에 따뜻하게 맞이해야 할 부모마저 엇지르는 건 불붙은 섶에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마음에 안 들어 울컥 솟아오르더라도 참고 살살 다루어야 한다. 바로 시할머니에게 “할머니 어떠세요?” 하고 대하듯 말이다. 나이든 시할머니는 늙은 것도 서러운데 귀도 잘 안 들리고 몸까지 불편하니 “뭐라구...”라며 쉽게 노여워하고 사소한 말에도 짜증내기 일쑤다. 조심 조심 “할머니! 불편하세요?”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라고 다정하게 다가서야 한다.
감정코칭은 아이를 살리는 길이다. 아니 아이의 두뇌를 살리고 나아가 공부를 살리는 길이다. 모름지기 내 아이가 밖에서 어떤 나쁜 감정을 겪었는지 모르는 마당에 엄마만이라도 “그래, 힘들지? 오늘 열나는 일은 없었니?”라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저 성적만 눈에 가득 차 “정신차려 임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하고 야단쳐보아라, 아이가 정신을 바짝 차릴까. 엄마는 ‘정신... 운운하는 말’을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줄 모르니 참으로 큰 일인 것이다.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