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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6) 머리는 좋은데 공부는 못한다면?
입력 2014-03-19 10:28:25 수정 2013031910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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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코칭하면서 낯이 익으면 으레 “지난 번 무슨 이야기를 나눴었지?”하고 물어보곤 했다. 짐짓 전혀 기억이 안 나는 듯 “맞아 그랬지 그리고 다음엔…”하며 기억을 되살리라 말하면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때 “넌 기억력이 참으로 좋구나!”라고 한 방 띄워주면 깜짝 놀라며 “아니에요, 전 공부는 꽝인데요~” 라고 펄쩍 뛰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 역력하다.

“아니 기억을 잘 하는데 뭘…. 기억 잘하면 머리가 좋은거지. 넌 머리가 좋은 아이다. 다만 공부는 좀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그게 뭔지 아니?“ 라고 물으면 답은 못해도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

세상의 정보랄까 신호는 알기 쉽게 아날로그 신호와 디지털 신호로 나눌 수 있다.

아날로그란 자연의 신호요, 동영상 또는 필름으로 나타내니 재미있고 기억도 잘 된다.

바로 우리가 나눈 이야기라든가 보고 들은 사실들이 다 아날로그 정보다. 책은 어떤가? 문자, 숫자, 도형, 기호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인간이 만든 거 아니겠는가? 바로 디지털 정보다. 흔히 돼지털이라고 말하는 디지털은 약간 익혀야 이해되는데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이게 어려운 이야기라고 설명하면 냉큼 알아듣는다.

마치 술을 잘 먹는 사람은 술배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위는 단 하나, 술고래라고 위가 둘이나 돼 술배, 밥배가 각각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머리 역시 일반 머리와 공부머리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술은 알콜이고 알콜에 적응된 사람은 술배가 크다 할 것이고 적응이 안 된 친구는 아무리 거구라 해도 술배가 적은 것이다.

술을 어떻게 하면 잘 마실까?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누구나 처음엔 쓰다든가 머리가 핑핑 돈다며 술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구 사람 살려!” 하고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외면한다. 하지만 한 잔씩 한잔 씩 빈도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덧 맥주 한 병은 보통, 2홉짜리 소주 한 병도 거뜬히 마시게 되고 이윽고 위스키 한 병에도 알딸딸하긴 하나 잘 견디며 기분 좋아한다. 요컨대 알콜을 정복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디지털을 익힌다면 공부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친구처럼 다가온다. 덤으로 머리 좋다는 소리도 듣게 마련. 문제는 이 디지털이 어떤 사람에게는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뱀을 볼 때 “아이 징그러워. 빨리 쫓아내”라고 기겁하며 진저리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요놈 봐라! 혀가 두 조각에 다리도 없는 놈이 꾸불꾸불 어찌 이리 잘 기어다니지?" 라면서 뱀을 만지작거리는가 하면 목에 걸고 다니는 바람에 아이들이 기절초풍 질겁하고 내빼게 만드는 친구도 있다.

디지털도 이 정도로 주무르면 공부는 수준급 소리를 듣는다. 디지털 중 가장 징그러운 게 무엇일까? 한자가 아닐까. 사람에 따라선 바둑과 같이 복잡한 두뇌스포츠나 트럼프 카드와 같은 그림도 디지털이라고 재미없어 한다. 한편, 음치들은 노래가 몹시 고약한 디지털이기라도 한 지 곡조는커녕 가사조차 외우는데 애먹는 있다. 과연 음치도 공부를 못할까?

모 서울대 교수는 카세트 테이프 하나에 똑같은 노래만 담아 운전할 때마다 수백번 들었단다. 예컨대 백지영의 노래라면 운전하는 내내 '총맞은 것처럼…'만 계속 들어가며 연습하는데도 리듬은커녕 가사도 끝까지 외우질 못했다나. 반대로 공부는 못하는데 노래 가사는 금방 외우는 천재가 있다.

한편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어려운 한자만은 친숙하게 지내며 자랐다. 중학교 때 도덕 선생님은 한 학기 내내 오직 독립선언문만 외우게 했는데, “150명 가운데 유일하게 정헌석만 끝까지 외워 모두가 놀랬다”고 세월이 수십 년 지난 어느 날 동창 친구가 확인해줄 지경이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뱀은 징그러워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지만 한자만은 귀엽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대로 백부님의 서당을 거의 매일 드나들다보니 한자보기가 부엌의 예쁜 그릇을 보는 만큼이나 재미있고 글자 하나하나가 실로 예뻐 죽을 지경이어서다.

적응이 잘 된 덕분이다. 자연적으로 독립선언문쯤 글방에서 보았던 맹자나 대학의 한자만도 못한, 그야말로 대단치 않은 디지털이었던 것이다. 특히 한글은 너무 시시해 도무지 공부답지 않았다. 오죽하면 디지털의 극치인 화학, 어렵다는 유기화학의 방정식이 재미있어 대학에선 화학을 전공했을까.

그래서인지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1차적으로 한자 적응부터 시킨다. 한자도 마구잡이로 적응시키려단 역작용이 나므로 소화가 부드럽게 만화로 된 책이나 스토리식으로 설명한 한자 책을 보여주며 어떤 게 좋으니 하고 물으면 100% 이야기식 책을 고른다. 대체로 김경수 교수의 ‘100자에 담긴 한자 문화 이야기’를 좋아해 많이 권했다. 그 결과 “ 이젠 책읽기가 재미있어요”란 대성과를 얻었던 것이다.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
입력 2014-03-19 10:28:25 수정 20130319102825

#키즈맘 ,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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