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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이제 그가 출연하는 영화라면 무조건 보겠다, ‘러브픽션’
입력 2013-02-16 10:48:58 수정 2012021610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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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게 뭐야.”

극 중 하정우가 공효진의 그것(?)을 보고 외쳤던 한 마디다. 영화 ‘러브픽션’을 본 관객들도 이렇게 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이고, 이게 뭐야.” 그 뒤에 한 마디 더, “이런 로맨틱 코미디도 가능해?”라고 말이다.

‘러브픽션’의 전계수 감독은 2006년 뮤지컬 영화 ‘삼거리 극장’으로 인상 깊은 데뷔식을 치른 바 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형식과 장르면에서 그간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기괴한 무엇’이었다.

그런 그가 또 한 번 ‘기괴한 무엇’을 들고 관객을 찾아 왔으니. 눈치 챘겠지만, 바로 영화 ‘러브픽션’이 그 주인공이다. 언뜻 평범한 코미디로 보이는 이 영화는 데뷔작 ‘삼거리 극장’과 마찬가지로 그간 로맨틱 코미디는 물론, 타 장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화적 장치만으로도 러닝타임을 빼곡히 채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31년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소설가 ‘주월’(하정우)이 완벽한 여인 ‘희진’(공효진)을 만나 펼치는 쿨하지 못한 연애담이 ‘러브픽션’의 큰 줄기다. 이 간단명료한 줄거리에 맘 놓고 무방비한 상태로 극장을 찾아선 안 된다. 바다괴물이나 외계인이 깜짝 등장하는 것 아니냐고? 아니,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거 내 이야긴데’라는 마음 속 작은 외침을 불러일으키는 공감 100%의 대사와 에피소드들이다. 혹시 실망했는가. 영화를 보기 전까진 실망은 금물이다. 어찌 저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연애의 단면을 포착했는지, 전계수 감독의 연애사가 궁금해질 정도니 말이다.

‘주월’이 잿빛 얼굴로 ‘희진’의 연락을 기다릴 때, 키스할 타이밍을 놓쳐 민망한 표정을 지을 때, 식어버린 사랑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마치 내 모습, 혹은 내 남자친구의 복사본 같다. 이뿐만 아니다. 딱 봐도 연애 초보인 ‘주월’을 ‘희진’이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 화난 ‘희진’에게 “생리 중이야?”라고 묻는 ‘주월’과 이에 “넌 방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했어.”라며 쏘아 붙일 때 여성관객은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렇듯 영화 ‘러브픽션’은 너무나 리얼해 자칫 지질해 보일 수 있는 연애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스크린에 투영한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이후 남녀 사이의 ‘진짜’ 연애담을 그린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러브픽션’의 가장 큰 재미는 다름 아닌 ‘하정우’에 있다. 맹세컨대 121분 동안 단 한 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전계수 감독의 폭소를 자아내는 대사와 이를 100배는 더 유쾌하게 만든 하정우 덕분이었다. 하정우처럼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또 있을까. ‘하정우’라는 ‘명민’한 ‘강호’가 충무로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행복했던 121분이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정우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중 하정우가 연기한 ‘주월’의 직업은 소설가. 그렇다 보니 내레이션은 물론, 주월의 대사는 그야말로 문어체의 향연이다. 헌데 이 문어체 대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작위적인 느낌도 없다. 대사가 하정우의 입에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배꼽 잡는 고백이라 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A4 6장은 될 듯한 문어체 대사가 빼곡하게 스크린을 가로 지른다. 여러 앵글로 재촬영된 이 장면에서 하정우는 단 한 번도 NG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생경한 문어체 대사를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셈이다.

공효진의 ‘액모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자’라는 설정 때문에 여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을 정도로 여성으로서 선뜻 출연하기 힘들었을 터. 완벽한 분장으로 치장(?)한 그곳을 당당히 드러낼 때 “수고했다.”고 박수 쳐주고 싶어진다.

다만 영화 초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줬던 희진이 중반부로 들어가며 캐주얼한 이미지로 바뀔 때 살짝 의아스럽다. 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수입사 직원’이라는 색다른 장치를 영화 스스로 던져 버린 느낌이란 얘기다. 이 부분에서 ‘완벽녀’라는 설정이 살짝 힘을 잃는다.


‘러브픽션’은 어찌 보면 소품같은 영화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소품이 꽤나 잘 빠졌다. 시종 흘러나오는 음악은 인물에 설득력을 불어 넣는다. 주월의 소설을 6, 70년대 한국영화 스타일로 클래식하게 표현한 점은 영화에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흔히 ‘러브픽션’처럼 아기자기한 영화들은 일본영화의 허무맹랑함과 유치함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곤 한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일본식 귀여움’은 더러 영화와 드라마를 촌스럽게 만들곤 했다. 다행히도 전계수 감독의 ‘러브픽션’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귀엽고 때로는 배 아플 정도로 웃기지만 ‘현실’이라는 단단한 틀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황무지였던 한국 로맨틱 코미디 시장에 ‘러브픽션’이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로 인해 하정우는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서, ‘시나리오 잘 고르는 배우’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이제 그가 선택한 영화라면 무조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관객들이 많아질 것 같다.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한경닷컴 키즈맘뉴스 김수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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