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의 이면을 밖으로 드러내고, 관습적인 사고 틀을 비틂으로써 현실을 새롭고 단순한 현상으로 빚어내는 우루과이 출신 망명 작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의 단편집 『금지된 정열』(문학동네 펴냄)이 출간됐다.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대부분의 국가가 쿠데타로 군사정권하에 놓이고 80년대 초중반까지 정치적 억압, 민간인 고문과 학살, 대규모 망명이 계속됐다.
이 책에 나타난 부조리한 상황들은 정치적 억압이 길어지면서 사회 분위기는 침체되고 사람들은 무기력해진 라틴아메리카의 실상이다.
「추락한 천사」에서 천사는 하필이면 피폭으로 계엄 상황인 도시에 추락한다. 그곳 주민들은 재앙에 이골이 난 나머지 추락으로 다친 천사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도울 기미도 없다. 그나마 천사에게 온정을 보인 한 여인은 가상 공급훈련 시간에 대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인에게 끌려간다.
또한 ‘나’ 또는 ‘그/그녀’라는 익명성을 통해 군부독재하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 타국에서 망명자로 숨어 살아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형벌」에는 고문과 학살의 기억을 안은 채 타국에서 망명자로 살아가는 직조공장 노동자가 나오는데, 역시나 이름 없는 그 여인은 얼굴 형상마저도 모호한 걸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모든 인물들은 끊임없이 출구를 찾는다.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꿈을 꾸고 욕망한다.
정열을 갖는 게 비록 자기기만이고 허망한 짓일 뿐이라도, 그조차 없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욕망의 포물선」에서 공동의 욕망으로 생동하던 한 도시가 욕망을 이루자마자 모든 믿음도 상상력도 읽어버리고 공허해지는 것을 보여준 건 그래서일 것이다.
한경닷컴 키즈맘뉴스 손은경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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