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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우리 가족이 여름방학 보내는 방법
입력 2018-08-07 12:13:38 수정 2018-08-07 17: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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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은 어릴 적 신화 같은 이야기.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여름방학이 찾아오고 말았다. 어떻게든 이 시기를 견뎌내야 한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방학 기간이 일주일 남짓이었는데 유치원에 가니 무려 한 달이나 된다. 끈적거림에 짜증이 올라오는 이 여름, 그래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많은 아이가 ‘남의 집’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색다른 환경에 우리 집에는 없는 새로운 물건을 탐방하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하면 나에게 말도 걸지 않고 혼자 방에서 한참을 논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집에서 아이들끼리 모여 놀고 부모들은 밀린 수다를 떨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평소에는 주로 동네 친구들끼리 오가며 노는데 방학기간에는 특별히 멀리 살고 있는 친구들을 방문한다.

지난 주에는 용기를 내어 혼자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 있는 친구 집을 방문했다. 앞쪽으로는 아이를 메고 뒤로는 배낭을 짊어진 내 모습에 비행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친정에 가는 거냐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정원에서 간이 수영장에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흑돼지를 사다 구워 먹기도 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으로 쌓은 친구네 집 담벼락과 그 너머로 펼쳐진 귤밭을 보니 제주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나 역시 다른 집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지만 저마다의 살림을 이루고 사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흥미롭다. 워낙 더운 여름인 데다가 친구도 나도 아이들이 있어서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제주에 왔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다. 2박 3일의 일정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녹초가 되어 이틀 간 와식육아를 하며 집 안을 기어 다녀야 했지만 말이다.


◆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시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는 관계로 명절이 아니면 자주 뵐 기회가 없다.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서 놀다 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뿅갹이가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무려 혼.자. 있겠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나 역시 독박육아로 지쳐 있던지라 내심 즐거웠다. 아이 하나라도 보내놓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여름방학 아니겠는가.

나의 걱정은 기우였는지 아이는 가자마자 장난감가게에 들러 갖고 싶던 장난감을 사고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콩나물국을 먹으며 매우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시댁 근처의 물놀이장에 매일 출석 도장을 찍어가며 원 없이 물놀이를 하고 할아버지의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함께 장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엄마, 아빠 없이도 즐겁게 잘 노는 모습에 이제 정말 '다 키웠다'는 말이 나왔다. 아이를 보내고 긴장이 풀렸던 탓일까 나는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아이 둘을 보다 보면 하나만 돌보는 것은 차라리 휴식이라더니 진통제를 먹고 둘째를 돌보며 그래도 두려워했던 것에 비해 수월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큰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너무도 반가운 목소리였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자 아이 입에서 ‘보고 싶어!’ 정도의 말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나도 너무 보고 싶었다며 호들갑을 한껏 떨어줘야지.

"…내 스타블래스터(장난감) 잘 있어?"

일주일 만의 첫 통화에 묻는 것이 장난감 안부라니 나는 무엇을 기대한 걸까 실소가 절로 나왔다.

"어, 그래. 잘 있어. 너 엄마는 안 보고 싶니?"

아이는 당연히 보고 싶다고 대답했지만, 옆구리 찔러 절 받는 심정에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지는 긴 통화를 끝내고 나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렇게 긴 기간 떨어져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막상 온다고 하면 걱정되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젯밤, 어머니가 보낸 사진에는 뿅갹이가 가족사진을 손에 꼭 쥐고 잠들어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처음 맞는 긴 방학에 긴장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보내고 있다. 시댁에서 열흘 가량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내일이면 뿅갹이가 돌아온다. 아직 남은 방학 기간을 보름정도 더 버텨내야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지 조금 더 탐방해볼 생각이다. 더운 날씨 탓에 쇼핑몰이나 백화점, 키즈까페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넘쳐난다. 아이와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모든 부모가 잘 견뎌낼 수 있도록 힘내길 바란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前 EMSM 카피라이터
現 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8-08-07 12:13:38 수정 2018-08-07 17:16:59

#여름방학 , #심효진 ,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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